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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 겁없던 짠순이의 독일행-1 나의 독일행은 총 세 번이었다. 그 중 첫 독일행은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고 진행되었다. 대학 4년 동안 독문학을 전공하면서도, 방학마다 있는 독일대학 연계 어학연수 프로그램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는데,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꿈이라도 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큰 획을 하나 긋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몇 달 후 가족들에게, 독일에 가겠노라 폭탄 선언을 했다. 혼자 독일 어학원을 알아보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어학 코스에 수강등록까지 마치고 난 뒤였다. 그렇게 안 하면 또 다시 갈등을 하고, 결국 돈 걱정에 분명히 못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딱 6개월만 나를 밀어달라 말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버티겠노라고. 당.. 2016. 9. 3.
누가 그린 그림일까.. 선선해진 밤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멋진 그림을 보고 왔다. 자연이 그린 그림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나는 이런 게 신기하다. 그림자는 그저 검정색일 것만 같아도 검정에도 이런 깊고 얕음이 있다. 가로등 빛을 제대로 받고 서 있는 이 그림자의 주인은 이런 모습이다. 초록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주 칼라로 쓰기 힘든 색이다. 심지어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는 데도 군데 군데 초록을 살짝 쓸 수는 있지만, 과하게 쓰는 순간 망하는 게 초록이다. 초록이 잘못 쓰이면 어린아이의 그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연은 이런 초록마저도 귀신처럼 잘 쓴다. 나무마다, 풀마다 톤을 달리해 하나의 촛점을 만들고, 그로부터 모이고 흩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결국 스스로 타고난 최고의 화가다... 2016. 9. 1.
현진건의 <고향> 속 일제의 수탈과 간도 이주 현진건의 '고향'이라는 작품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작중 화자인 '나'와 마주 앉게 된 사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기차는 지금처럼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방처럼 생긴 형태다. 네 명이 그 안에 들어가 앉을 수 있는데, 작품 속 찻간에는 앞서 언급한 작중 화자인 '나'와 바로 맞은 편 사내 외에도, '나'의 곁에 앉은 중국인, 사내의 곁에 앉은 일본인이 더 있다. '나'의 시각으로 본 사내는 좀 유별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옥양목 저고리에 중국식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일본식 기모노를 두루마기격으로 걸치고 있다. 감발(헝겊으로 싼 발)에다 짚신까지, 초라한 행색이기도 했지만,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저 나라 사람도 아닌 듯한 옷차림이 참 우습다.. 2016. 8. 31.
코미디언 구봉서씨 별세 소식에 하게 된 이런저런 생각들 독일 뉴스를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ums Leben gekommen'. ums(=um das) 전치사+정관사 / Leben(생, 인생) / gekommen(kommen의 과거분사형: 영어의 come처럼 '오다', 때로는 '가다'의 뜻) 이 말은 관용적으로 쓰여 '사망했다'란 뜻이다. 그러나 이런 관용적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으로 오다', 또는 '생을 향해 가다' 등의 엉뚱한 해석으로 내용을 잘못 알게 될 것이다. 'ums Leben gekommen'은 우리말 '돌아가(셨)다'를 연상시킨다.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노환으로 별세했다.'에서 '별세'란 말 그대로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다. 즉 죽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경우, '죽었다'나 '사망했다'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상.. 2016. 8. 30.
금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공주 공산성 공주는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이라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가게 되는 도시다. 주말에 볼 일이 있어 잠깐 공주에 들렀다가, 날씨도 선선하니 좋아서 공산성에 올라보았다. 공산성 위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다. 공주대교와 그 너머 신공주대교의 모습도 보인다. 물길을 따라 쭉 나아가면 그 앞쪽으로 펼쳐진 산이 계룡산 자락이고, 왼쪽이 세종시, 오른쪽은 대전 방향이다. 공주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공주목'이라 불리었으며, 전국 8개 감영 중 하나인 충청도 감영이 있던 곳이다. 대쪽같은 선비들이 많았던 이 도시를 축소시키려는 일제의 의도적인 행정 개편으로, 충청 거점으로서의 지위를 빼앗기고 현재 대전시 유성구 일원으로 편입된 '유성' 지역도 함께 빼앗겼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등장하는 '전국에 살기 좋은 곳.. 201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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