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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 시골에서 감자가 올라왔다. 감자알들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탕 속으로 들어가 노곤노곤한 몸을 푹 담갔다. 그동안 땅속에서 고단했던 삶이 고이 삶아졌는지 어쩐지 젓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아프다고 안 하는 걸 보니 삶아 졌다. 보기만 해도 예쁜 감자들이다. 올해 감자는 흔히들 '금자'라고 한다.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는 감자인데, 올해는 유독 작황이 안 좋다. 시골 어머님이 혼자몸으로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라, 도착하자마자 삶아 껍질을 까서 소금에 찍어 입 속에 넣었다. 포슬포슬 부서지는 식감에 뜨거운 열기를 호~호~ 내보내며 그 자리에서 세 알의 감자를 맛있게 까먹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안 받으신다. 또 밭에 가 계신가 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두 분이서.. 2018. 6. 5.
새벽을 여는 사람들 아침마다 문 앞에 놓인 신문을 가져오면서 가끔은 생각했다. '요새 같은 세상에도 이렇게 이른 시각에 배달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힘든 나로서는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났다. 어렸을 적에 새벽이면 동네마다 내달리며 "신문이요!"를 외치던 고학생들의 모습마저 떠올라 마음 한 편에는 더 진한 경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각에 일찍 깨어 홀로 신문을 돌리는 사람이 누군지, 쓸데없는 궁금증까지 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쯤 우연히 현관문에 '툭'하고 던져지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신문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신문을 배달한 사람은 '일찍 일어난 사람' 이 아니라 '늦게 자는 사람' 이라는 것을... 2018. 6. 4.
신문광고로 애인 찾는 시대 서양에서는 신문광고를 통해 애인을 찾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곳에서 찾는 파트너의 이상형은, 예쁘고 친절하며 명랑하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등이다. 신문을 통해 결혼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한데, 그래도 개중에는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문광고로 애인 찾는 시대 이성친구든 애인이든 찾을 때 잘생기거나 예쁘고 친절함이 최우선 항목일 것 같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의 이상형은 좀 다르다. 남성들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젊어 보이는 여성을 찾는다. 또 딸린 식구가 없기를 바란다. 장애가 없을 것,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여성이 원하는 남성은 소탈하고 부드럽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등 좀더 이상적이다. 어떤 여성은 위험하게도, 자신은 집과 차도 소유.. 2018. 6. 3.
소확행 며칠 전 어느 칼럼에 '소확행'이란 단어가 있었다. 이제는 '욜로'의 시대가 가고 '소확행'을 이야기하나 보다. 소확행은 '작지만(小) 확실한(確) 행복(幸)'의 준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에 나오는 말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과연 무엇일까? 한때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시골 어느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손에 흙을 묻히고 하루하루를 소소하게 도란도란 사는 걸 보노라면, 행복이란 게 어떤 건지 조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소탈한 삶 속에서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미소가 유난히도 환하다. 그들의 소확행이다. 나의 소확행은 그들보다 더 단출하다. 그들은 안락한 삶을 택하고 그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말하지만, 나의 소확행은 그나마 그냥 '커피'다. 한 5년.. 2018. 6. 2.
수원역을 바라보며 분당선이 새로 생긴 이래 수원역에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오랜 기억 속에 수원역은 1호선 종점, 묵은 체끼를 토해 내듯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내리던 곳이었는데, 노선이 천안·아산까지 뚫리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분당선도 연결되었다. 이른바 '세기 말'에 와보고 처음이니, 세월이 흐른 만큼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그때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새 건물이 많이 낯선 감이 들어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수원역과 함께 수원터미널도 자주 이용했었는데, 터미널은 아예 딴 동네로 사라졌다.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작고 허름하고 북적거리는 터미널에서, 지방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곤 했었다. 터미널이 새로 이전할 거라던 말에, 제발 빨리 좀 이전하라고 간절히 바라면서 낯선 ..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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