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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아이 생일상을 차리며 새삼 엄마임을 느끼다..

by 비르케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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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작은애의 생일이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 하나
달랑 사서, 함께 노래 부르고 촛불 끄고
한 끼를 웃으며 간단히 떼우는 게 다였는데,
올해는 작은애가 유난히 손으로 꼽아가며
기다리는 통에, 엄마인 제게는
암묵적인 압박(?)이 아닐 수 없었지요.


옆에 있는 사진은 작은애가 혼자서
애써 만든 '일주일 달력'입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작은 종이에 일일이
써서 요일순으로 차례대로 다 붙이고는
(철자가 거의 틀렸습니다. ^^),
거기에 투명 테이프 붙인 화살표를 떼었다 붙였다  
날마다 아래쪽으로 한칸 한칸 이동해가며
일주일을 보내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만들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교실에 선생님이 만들어 둔 이런 모양의 달력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똑같이 한번 만들어 봤다네요.
이 정도 기다림이 있었으니 미역국 정도야 끓여 줘야지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의 생일상을 차려 보았답니다.


주말이라고 이것저것 한꺼번에 장을 봐 오느라 작은애 생일 미역국에 넣을 고기를 깜박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얼른 나가서 하나 사오면 될테지만, 독일에서는 장 보러 나가는 것도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집에서 걸어 30분 거리이고, 그 곳도 아니면 버스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만 하니까요. 어찌되었건 멸치라도 있으니 멸치국물을 내서 미역국은 끓일 수 있었지요. 
미역국 본 지가 몇달 만이라 맛있다며 아주 잘 먹더군요.


아이스크림 케잌은 큰애가 준비했습니다.
한달 용돈이 4유로인데,
아이스크림 케잌에 3유로를 선뜻 쓰더군요.
과자도 잘 안 사 먹는 아이인데
동생 생일이라고 멋지게 쏘는 모습에,
살짝 엄지 손가락 한 번
치켜들어 주었습니다.

수퍼마켓 냉동칸에서 가져온 건데도
생각보다 맛있더군요. 안에는 초코 아이스크림과 
작은 초코렛 조각이 채워져 있습니다.   
 
엄마인 제가 주는 생일선물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다 조르던 모 인터넷학습을 3개월분 끊어 주었습니다. 다른 건 다 필요없다고 이것만 해달라니 참...
유아때부터 가끔 들어가 공부하던 사이트인데, 정말이지 참 좋아하네요.

그래도 뭔가 허전해서 미역을 사러 아시아 상회에 간 김에 이렇게...
라면도 두 개 샀답니다. 

요즘 들어 라면 먹은 지가 언제인지..
더군다나 우리나라 라면 먹은 건 가물가물할 정도라,
라면을 생일 선물로 사서 줄 생각이 들더군요.  
먹고 싶을 때 끓여 먹으라고 주니,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 작은애.. 
결국은 오늘 저녁 둘이서 그 중 한 봉지를 끓여 밥까지 말아 먹고는 배가 부르다고 헉헉대기까지 하더군요.
한 봉지는 아직 씽크대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어릴적 제 생일에 삼색(三色) 나물은 꼭 빼지 않던 엄마에게, "내 생일인데 왜 내가 먹지도 않는 나물을 해요?"하고 투정 꽤나 부렸었는데,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좀 이해가 갑니다. 없는 형편에 딱히 차릴 건 없고, 그렇다고 생일을 안 쇨 수는 없으니 삼색 나물에 과일 한두가지라도 올려 생일상을 차리신 거지요.
그거라도 잘 먹어주면 예뻤을 것을, 내내 입 내밀고 투정부리는 이 딸이 밉기도 많이 미웠을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에 이렇게 밖에 못 해주니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생일날 작은애는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손을 꼽아가며 어떤 날을 기다리고, 작은 일에 기뻐할 줄 아는 아이의 모습이 제게도 작은 교훈을 주었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도 엄마가 되지만, 이렇게 아이를 길러가며 정말 엄마가 되어 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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