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아들 둔 엄마가 가게 되는 그곳
며칠 전부터 집으로 택배가 하나 둘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주문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이번에 군에 입대합니다.
혼자서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었죠.
군에 갈 날만 꼽고 있을 뿐, 물건들은 미처 챙길 생각도 못했네요.
필요하면 나가서 사면 된다 여겼던 것일까요...
학업 때문에 늦게 입대하게 된 아들.
가져갈 물건을 스스로 챙기는 모습에, 다 컸구나 새삼 실감했습니다.
엘베 앞에서 빠진 게 없나 살피고 있는 아들.
잘 챙겨졌는지 '아몰랑' 하는 것인지, 가방을 휙하니 박력 있게 둘러맵니다.
도둑촬영하느라 눈치 꽤나 봤어요. ㅎㅎ
사진은 찍고 싶지,
아들은 유독 뾰족하지...
어릴 때부터 녀석들의 순간순간을 도촬해왔는데, 이날이 가장 맘 아팠어요.
사실 우리아들 빡빡머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학교전통이라는 명분하에 고입과 함께 빡빡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고딩 때는 사진 찍다가 아들한테 저지당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사진 따위는 문제도 아닌지 표정이 그냥...
앞만 바라보고 있네요.
"어서 먹어."
"많이 먹어."
"더 먹어둬~"
많이 먹여 들여보내고 싶은데, 딱 한 그릇 비우고 숟가락 놓습니다.
훈련기간 중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가판대의 모습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습니다.
아들이 챙긴다고 챙겼어도 빠진 물건들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냥 또 지나쳤네요.
낯선 풍경이라 사진까지 찍었으면서도요.
차던 시계 그대로 가지고 갔는데, 군인시계가 입간판에 떡하니 새겨져 있네요.
행군시 어깨 짓무르니 가방에 끼울 패드 꼭 필요하고요,
요새는 핸드폰 들고 들어가니 충전기도 필요한데, 일체형이라야 한대요.
지급물품이 다 똑같다보니 네임펜도 가져가야 하고, 썬크림과 깔창도 밖에서 가지고 들어가야 해요.
그런 건 아들이 알아서 다 챙겼습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논산훈련소에 도착했어요.
2시까지인데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주차공간이 꽉 차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입영열차로 혼자 왔었다는 그곳...
지금은 금쪽같은 내아들들, 이곳까지 데려다주러 다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네요.
주차장이 꽉 차서 부대 뒤편으로 안내하는데, 하필 훈련장을 지나가요.
날도 차가워지는데, 이곳에서 훈련받을 생각 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데, 분위기가 자못 숙연합니다.
군복 입고 지나가는 군인들만 봐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고요.
이어서 식이 시작되고...
순서에 따라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그리고,
아들 바라보며 사랑한다 말해주라 합니다.
울아들 사랑한다 외쳐주었어요.
아들도 "엄마 사랑해요." 해주네요.
아들 훈련소 데려다줘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다 큰 아들에게 사랑한단 말을 들을 때의 그 벅찬 마음에 이어지는 서글픈 순간을요.
아들들이 부름을 받고 내려가야 하는 순간.
웅성웅성.. 우왕좌왕..
그 속에 부모들의 애타는 표정은 똑같습니다.
앉아서 볼 때는 이번에 모인 훈련병들이 100여 명 정도나 될까 했는데, 1400여 명이라고 해요.
이 많은 아들들을 훈련하고 통솔하고...
아들들도 적응해 나가야 하고요...
오늘 같은 날도 지각은 있죠.
시작한지 한참 지나 할랑할랑 들어오는 건데도 아무도 뭐라 안 하네요.
어차피 오합지졸 여기까지는 좀 봐주나 봅니다.
훈련병 선서가 있고, 간단한 제식훈련이 이어졌어요.
그러고 나서 원래는 작별의 시간이 이어진다고 들었는데..
부모에게서 자식을 떼어놓는 거니까 그 정도 시간은 줘야죠.
그런데 이대로 부모들은 돌아가라고 합니다.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일정을 마무리하려면 부모님들이 어서 돌아가야 한대요.
옆에 있던 엄마가 펑펑 서럽게 웁니다.
처음 본 분이지만 어깨를 쓸어주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상당히 사연이 많을 것 같은 장소를 차로 지나왔어요.
세월따라 퇴색한 낡은 건물이 이렇게 애처럽게 보인 적은 처음입니다.
훈련소에 아들을 두고 발길을 돌리는 마음, 겪어본 엄마들만 알겠죠.
그동안 저도 몰랐습니다.
논산역에도 들러보았어요.
비가 오락가락 날씨가 종일 끄물거립니다.
이곳을 기억하는 분 많으시겠죠?
요새는 자차로 왔다 갔다 하니 예전분들의 기억 속에나 있을까요?
논산역 선로 위로 걸쳐진 다리입니다.
상행선 열차가 들어옵니다.
무궁화 열차입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니 훈련소 입구에서 받은 명함들이 가득합니다.
수료식 때 펜션 이용하라고 뿌린 명함입니다.
명함들 중에는 정보가 될만한 내용을 담은 것도 더러 있네요.
교육예정표라고 되어있는데, 1주차에 핵 화생방 방호?
맞는 정보인지는 모르겠어요.
5주과정 교육 예정표도 실려 있어요.
1주차: 정신전력, 제식훈련, 체력검정, 전투부상자 처치, 핵 화생방 방호 등
2주차: 소총 조작 및 사격술, 영점사격, 기초사격 등
3주차: 수류탄, 체력검정, 제식훈련 등
4주차: 각개전투, 20Km 행군 등
5주차: 보안인성함양교육, 체력단련, 수료식
집에 돌아와 빈 방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ㅠㅠ
아들이 타지 생활 끝에 끌고 온 물건들로 집이 꽉 차 있는데도 이 빈 느낌 뭐죠?
입대일 기다리며 심심하다고 치던 기타도 쓸쓸히 놓여 있고요.
오래전, 아들 기숙사 고등학교에 처음 데려다주고 오던 날 펑펑 울었었죠.
그때부터 학업때문에 줄곧 멀리 있었기에 이번에도 눈물이 안 날 줄 알았습니다.
"살면서 너로 인해 새로운 걸 많이 겪는다."
라고 했더니,
"이런 건 안 겪어도 될 것 같은데요."
답하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으로 인해 접하게 되는 새로운 경험들이 매번 값지게 여겨집니다.
그때마다 가족에 대해 더 진한 사랑을 느끼게 되니까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올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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