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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102

남아 있는 나날 -2 이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을 읽다 보면,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희망보다 살아온 나날에 대한 회한이 더 강렬해진다. 달링턴홀에서 평생을 집사로 일했던 스티븐스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최고의 집사로 살고자 평생 주인만을 바라보며 산다. 원칙적이면서도 반듯한 그의 삶의 태도는 자신에게 있어 '위대한 집사'로서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덕목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그가 지나온 날들을 더듬었을 때 일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상 사람들이 주인이었던 달링턴경을 보고 나치 조력자라는 이유로 아무리 욕을 해도 스티븐스 만큼은 주인의 순수함을 의심치 않았다. (사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 맨 끝 번역자의 해설처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논할 정도의 거창한 주제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티븐스에.. 2018. 5. 13.
남아 있는 나날- 1 서점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한참 전이다. 서점 가판대 앞을 지나다가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이름을 접하고, 그가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임을 떠올리며 집어든 것인데, 집에 놓고 읽다 말다, 한참을 방치하다 결국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되었다.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는 1954년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되던 해에 부친을 따라 영국에 이주해 철학과 문예 창작을 공부했다. 그 이후에도 영국에 살면서 일본색을 가진 영국의 작가로 살고 있다. 이 책 '남아있는 나날'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 중에 어떤 걸 읽어볼까 하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집어든 책이다. 제목이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영화로도 나와 있다. 타임즈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위대한 작가 50인'.. 2018. 5. 12.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화자인 김춘수가 '이중섭'을 만난 일을 쓴 시다. 광복동과 남포동은 부산에 있는 지명이다. 즉, 부산에서 이중섭을 만났다는 것인데, 부산으로 말하자면, 이중섭 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인고의 장소이다. 부산에서 이중섭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시 엘리트 코스였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였지만 한국전쟁은 그를 비참함속으로 몰아넣었다. 원주에 어머니를 두고 잠시 피난한다는 것이 영영 이별이 되어 버렸고, 집도 절도 없는 궁핍한 삶 속에서는 그림마저도 사치였다. 그의 아내는 일본 여자였다. 유학 시절 만난 마사코(한국 이름 '남덕')는 그에게 있어 등불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다 결국 병이 들었고, 어쩔 도리 없이.. 2016. 11. 10.
이청준의 동화에서와 같은 어긋난 자식 사랑 이청준이 타계했을 때 나는 타국에 있었다. 멀리서 아슴하게 들려오는 그의 부음에 참 가슴이 아팠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달고 산 책들 중에 그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 읽었던 책들이, 같은 작가의 것이든 다른 작가의 것이든, 한데 섞여 내용마저도 가물가물하다. 몇 년 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읽게 된 책 속에 반갑게도 이청준의 것이 있었다. 파랑새 창작 문학 시리즈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청준의 판소리 동화' 다섯 권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 는 고전 '옹고집'의 내용에다가 이청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교훈적이면서도 매우 해학적이다. 초등학생 대상의 책이지만, 이청준 특유의 '글을 풀어가는 힘'이 느껴져 어른이 읽어도 괜찮다. 는 놀부만큼이나 못된 짓을 하다가 벌을 받게 되는 옹고집의 이야기다... 2016. 10. 12.
'달밤에 술 마시기'- 정약용이 권하는 한 잔 간혹 신문에서 괜찮은 걸 건질 때가 있다. 정약용의 이 시는 이년 전 신문에서 찢어내 보관하던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한번 더 읽기 위해 이런 걸 일부러 오려서 보관해도 다시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웬만한 건 그냥 식탁 근처에 두었다가 대충 보고 버리곤 하는데, 이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정약용을 참 좋아한다. 그의 학자다움이 좋고, 청빈함이 좋다. 가족을 아끼는 인간 정약용도 좋다. 그런 정약용이니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만 하다. 그는 정조의 사람이었고, 정조가 선왕의 신하들과 그 숨막히는 환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원화성을 계획할 당시에도 거중기를 고안해 화성 축조에 큰 공을 세우고, 정조가 물길을 편히 건너갈 수 있도록 배다리도 고안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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