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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102

<아버지의 뒷모습>-주자청 어릴적 읽었던 글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예전엔 느껴보지 못 했던 새로운 느낌을 맛보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도 모른 채 그냥 교과서에서 슬렁슬렁 지나쳐 읽었던 글인데, 세월이 흐를 만큼 흘러 우연히 그 글을 다시 대하게 되면 왠지 감회가 새롭다. 오래 전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과 같은 반가움과 긴 여운도 있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야 실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가슴이 절절해진다. 얼마 전 읽은 주자청(=주쯔칭)의 글이 그랬다. 주자청(朱自淸: 1898~1948)은 중국 격변기를 살다 간 시인 겸 평론가이다. 그는 이외에도 , ,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산문은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묘사가 돋보인다. 에는 총 35편의 산문이 함께 실려.. 2016. 10. 1.
오래된 책 속의 '오래된 서적' 내 책장에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꽂혀 있다. 한때는 그의 시 몇 편 정도는 외울 정도로 가까이 했던 시집이지만, 언젠가부터 갑작스레 세간에 너무 자주 오르내리고 교과서에까지 실리면서 어쩐지 조금은 시들해졌다. 그렇게 오래 책꽂이에만 꽂혀 있던 걸, 정말로 오랜만에 뽑아들었다. 책이라면 신주 단지처럼 여기는데도, 세월이 흐르니 어쩔 수 없이 겉장이 많이 바래고 모서리도 많이 낡았다. 대체 언제적 책인지 살펴보니 참 오래되긴 오래되었다. 1990년 8쇄를 샀으니, 아무리 못 잡아도 25년은 된 책이다. 값이 2천원이다. 그때도 2천원이면 참 쌌던 것 같다. 다른 서적에 비해 이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온 시집들이 구성도 좋았고, 가격도 저렴해서 기형도 시집 말고도 몇 권이 더 있다. --.. 2016. 9. 23.
이화에 월백하고... 센티멘탈리즘의 정제 '감성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 중 가장 적격이라 생각되는 표현은 이거다. 다른 사람이 50으로 여기는 어떤 현상에 대해 70~80으로까지 느끼고 생각하는 것. 기쁨을 느끼는 것도, 슬픔을 느끼는 것도, 행복이나 사랑을 느끼는 지수도 마찬가지다. 고려 시인 이조년의 시 '다정가'는 이러한 센티멘탈리즘을 가장 잘 대변하는 시인 것 같다. 옛날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 이화(梨花). 그 하얀 배꽃에 하얀 달빛이 한 점 은은하게 드리운다. 밤이 깊어 삼경(자정 전후)인데, 잠 못 이루고 달빛 앞에 서 있는 '나'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규(두견새) 울음 소리만 야속하다. 그리하여 생각한다. '다정도 병이런가...' 다정(多情)... 바로 센티멘탈리즘이다. 하얗게 핀 배꽃에 앉은 하얀.. 2016. 9. 13.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라 시대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지 못 하고 현실에 안주하다 몰락한 예를 들 때, 흔히 독일 필름 회사 '아그파'를 거론한다. 100년 이상의 화려한 역사를 지닌 카메라 필름 회사 아그파가 졸지에 문을 닫은 이유는, 시장이 점차 디지털화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3대 필름회사 중 하나였던 '코닥'도 마찬가지 이유로 몰락의 길을 갔고, 오로지 후지필름만이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를 통해 고전을 면했다. 최근 어느 광고인과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아이피 주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업용 블로그를 키운 후, 블로그당 얼마의 돈을 받고 블로그 파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포털사이트 N사의 방침이 바뀌면서 더 이상 블로그를 파는 일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때.. 2016. 9. 5.
현진건의 <고향> 속 일제의 수탈과 간도 이주 현진건의 '고향'이라는 작품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작중 화자인 '나'와 마주 앉게 된 사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기차는 지금처럼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방처럼 생긴 형태다. 네 명이 그 안에 들어가 앉을 수 있는데, 작품 속 찻간에는 앞서 언급한 작중 화자인 '나'와 바로 맞은 편 사내 외에도, '나'의 곁에 앉은 중국인, 사내의 곁에 앉은 일본인이 더 있다. '나'의 시각으로 본 사내는 좀 유별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옥양목 저고리에 중국식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일본식 기모노를 두루마기격으로 걸치고 있다. 감발(헝겊으로 싼 발)에다 짚신까지, 초라한 행색이기도 했지만,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저 나라 사람도 아닌 듯한 옷차림이 참 우습다.. 2016.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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