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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가스 오븐, 왠지 맘에 안 들어..

by 비르케 2009.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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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저녁으로 피자를 구우려고 방금 전까지 오븐과 씨름을 하다가 거실로 나왔다. 
피자를 넣고 불을 붙이려는데(늘 그렇듯 예열 무시), 도무지 불이 붙질 않아서 몇 분 동안 주방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는데, 드디어 불이 붙었다.


내 물건이 아니고 이 집에 붙어있는 거라, 고장이라도 난건가 신경이 쓰였는데, 그나마 불이 붙어서 다행이다.
이번에 고향에서 김이랑 양념류를 선편으로 부쳐와서 그 동안 한국식 식사를 하느라 이 오븐을 안 썼더니 이런가 보다. 언젠가 여행을 다녀와 가스불이 잘 안 붙었던 적을 떠올리면, 이번에도 아마 그 동안 사용을 안 한 게 불이 잘 안 붙은 이유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작년 3월, 비어 있던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 오븐에 불을 붙이기 위해 나는 오늘보다 더 오래 주방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손잡이만 돌리면 바로 불이 붙는 우리나라의 가스 레인지와 달리, 이건 스파크를 일으켜주는 기구가 따로 있어야 불을 붙일 수 있어, 왼손으로는 손잡이를 돌리면서 오른손으로 그 기구를 화구에 쏘아 줘야 불길이 일어난다.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녹록지 않는 작업이다. 더구나 직접 조리를 하는 오븐의 상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단은 불 붙이기가 더욱 힘들다. 십여년 전에도 처음에 이 작업을 못 해, 함께 살던 독일 친구를 몇 번 귀찮게 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가스 검침을 나온 이에게 물으니, 기숙사 같은 곳 말고는 독일 대부분이 전기보다는 가스를 주방이나 난방 연료로 쓰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전기만 쓰던 기숙사에도 살아봤었고, 전기+가스를 쓰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살아봐놔서, 둘 간의 비율이 어느 쪽이 큰지 알 수 없었는데, 그 검침원의 말에 의하면, 가스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그가 하던 말, "전기는 비싸잖아요!!"

며칠 전 뉴스에서 보니, 독일내 가스 가격이 더 내려간다고 한다. 반면 전기는 원래도 비싸지만, 거기다 또 해마다 쭉 오르는 추세다. 그러니, 나처럼 난방이나 조리용으로 가스만를 사용하는 집에 사는 것은 비싼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얼마 전 환율이 유로당 2000원을 넘어버렸을 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전기 주전자를 포기한다고 했었다. 
전기 주전자 대신, 일반 주전자나 냄비를 사용해 가스불에다 물을 끓이겠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도 환율의 고공행진은 일년여만에 가닥이 조금이나마 잡혀가고 있지만, 그 일년이 유학생들을 비롯, 독일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아껴쓰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가스는 전기에 비해 싸기는 하지만 늘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집에 다 있는 가스레인지 후드가 독일에는 거의 없다. 싱크대 광고에 보면, 예쁜 부엌 가구들과 함께 후드가 찍힌 사진들이 많은 데도, 일반가정에서는 후드를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가스 후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냄새를 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이 타고난 폐 가스를 뽑아내는 일이 후드의 주 임무이다.
독일 사람들도 가스 점검시에 폐 가스(Abgas)량을 측정하는 걸 보면, 이들도 폐 가스가 몸에 치명적이란 사실 정도는 알 텐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에 사니, 독일식으로 환기나 잘 시키려고 창문을 열어두고 음식을 만들면서도,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가스레인지 대신에, 조금 더 비싸더라도, 편리하고, 깔끔하고, 안전한 전기 레인지를 하나 가지고 싶다는...
사실 말이지, 아래로 고이는 이 폐 가스에 가장 빨리 노출되는 사람은 어른보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왠지 가스레인지가 마음 한 켠에 괜한 찝찝함을 준 날,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알아서 병'인지, 그들이 '모르는 게 약'인지...

오븐에 불을 붙이느라 가스를 너무 마셔서, 어디가 아픈 것 같기도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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