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나는 길목에 특이한 건물이 있다. 평기와를 구워서 건물을 짓는 재료로 이용했다. 처음에는 돌을 깎아 만든 것인가도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와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모양이 아니라 일부러 평평하게 구워낸 기와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찻길 쪽 벽에는 이렇게 치장도 해 두었다. 마치 우리 전통 창 '꽃살문'에 들어가는 꽃무늬 또는 수정과에 띄운 대추꽃 같은 올망졸망 귀여운 장식이다.
하남시 유적 4호, 천주교 구산성지 입구의 모습이다.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건축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곳 구산성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도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과 그 외 여덟 명의 순교자가 함께 묻혀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구산성지에 막 들어서면 성모 마리아 상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 희년을 기념하는 촛불 봉헌대가 마련되어 있다. 바로 앞쪽에 있는 무인판매대에서 초를 사서 봉헌할 수 있다.
미사나 기도에 필요한 물건들, 십자가, 성모상, 묵주, 초, 미사포, 장식품 등이 놓여 있다. 예전에 성당을 다닌 적이 있어서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정도만 알고 있다.
구산성지 안에 '십자가의 길'이 두 군데 마련되어 있다. 제1처에서 14처까지 순서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때를 생각하면 두 군데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시점에서 죽어 묻히는 시점까지를 담고 있다.
'안당문'이라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무덤이 이어진다. 기해박해는 헌종 5년에 있었던 천주교 탄압 사건이다. 그 이전에도 박해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는 모두 양반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서학(西學)을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사건은,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다섯 번, 큰 사건 위주로만 보면 신해박해를 제외하고 네 번이 있었다. 그중에 구산성지의 순교자들과 관련된 것은 기해박해다. 잠깐 신해박해 ~ 기해박해만 요약해볼까 한다.
신해박해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천주교는 '서양에서 온 학문'이라는 뜻의 서학으로 불리며 조선 양반들 문화 사이에 스며들었다. 외사촌 지간이었던 두 신하가 서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당시로서는 풍기문란을 넘어 불효 막심한 행위를 하자 정조가 본보기로 두 신하의 처형을 명했던 사건이다.
신유박해
갑작스럽게 정조가 죽고 나자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조의 사람들이 탄압을 받게 된다. 참고로 정순왕후는 영조의 계비지만 정조의 친할머니는 아니고, 나이도 정조와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정조를 밀던 시파와 달리, 정순왕후의 뒤에는 벽파가 있었다. 시파에는 주로 안동 김 씨들이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순왕후가 이를 이용해 천주교를 탄압한다. 그 바람에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과 그 형제들도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기해박해
정순왕후가 죽고 나자 효명세자(순조의 아들)의 장인이었던 조만영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다. '풍양 조 씨' 세상이 된 것이다. 효명세자가 단명하는 바람에 풍양 조 씨 세력은 금세 힘을 잃고 말지만, 이후에도 60년 세월 동안 왕실 외척이나 특정 집안의 세도정치가 이어지니 당연히 왕권은 약하고 삼정은 문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전국에서 민란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 서민들 사이로 스며든 천주교는 만민평등까지 부르짖는다. 풍양 조 씨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안동 김 씨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또 한 번, 이번에는 민간에까지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벌였던 사건이 기해박해다. 구산성지의 순교자들도 순교한 바로 그 사건이다.
기해박해 때 함께 처형당한 '모방 신부'의 모습도 구산성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도 편기와로 장식이 되어 있다.
구석구석에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용조용 경건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구산성지는 하남 미사강변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런 역사적인 공간이 도심에 섞여 있으니 왠지 더 아늑한 느낌이 든다. 도시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의외로 복잡한 도심에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구산성지 --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북로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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