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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슬픈 왕세자를 보며 떠올리는 문종

by 비르케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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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영국에서는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런 날을 대비해 필립공이 손수 개조한 랜드로버에는 필립공의 왕실 깃발로 덮인 관과 그 위로 장교모, 그리고 필립공의 검이 놓여 있다. 그리고, 초록색 랜드로버 바로 뒤를 바짝 따르고 있는 사람, 찰스 왕세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찰스 왕세자는 눈물 흘리는 모습이 여러 번 카메라에 잡혔고 시종일관 상기되어 있는 얼굴이었다. 이 눈물은 찰스 왕세자가 그의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보여주는 눈물이었다. 왕세자는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눈물 흘리는 찰스 왕세자

 

이번 주 수요일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5세 생일을 맞이한다. 장례식날 고개를 숙인 채 예배당으로 들어가 쓸쓸하게 홀로 앉아 있던 여왕을 떠올려 보면 이번 생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비통스러울지 가늠이 된다. 이번 여왕의 95세 생일은 전염병 때문에도 여느 해보다 조용히 지나갈 것 같다. 찰스 왕세자 부부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고, 윌리엄 왕자 부부도 당일에 전화로만 예를 대신할 예정이다. 왕실과 등지고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해리 왕자도 장례식만 참석한 후 영국에 오래 머물지 않고 출국한다. 홀로 남은 여왕이 얼마나 더 기운을 낼 수 있을지 우려 반, 의문 반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군주제를 택한 나라들의 왕권 이양 문제도 복잡해져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16년 아키히토 왕이 고령을 이유로 장남 나루히토에게 왕권 양위 의사를 밝혔고 2019년에 나루히토 왕이 즉위했다.  당시 나루히토 왕의 나이 59세였다.

 

찰스 왕세자의 나이는 현재 72세, 왕세자의 나이가 고령이 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의 장남 윌리엄 왕세손이 왕위를 승계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찰스 왕세자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낫겠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다.

찰스 왕세자를 보며 우리 역사속에 억울한 세자 한 명을 떠올려보게 된다. 어쩌면 찰스 왕세자보다 더 억울할 것 같다. 물론 인품이 좋아 서운해하지조차 않았을 것 같지만, '선왕이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던 세자'라고 하면 금세 조선시대의 '문종'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세자로만 산 게 아니고 끝에 딱 2년 왕도 되어 보았다. 

 

세종은 어질고 현명한 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종이 낳은 대군들 또한 어려서부터 다들 훌륭했다. 세종은 정실 왕비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 여덟 명이나 되는 대군을 두었다. 대군이란 정실 왕비와의 사이에 낳은 왕자를 가리키니, '~대군' 말고 '~군'까지 더하면 총 열여덟 명이나 되는 많은 아들을 두었다. 그중에 얼른 떠올려 보아도 문종을 비롯해 수양대군,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왕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걸출한 인물들이 생각난다. 지금의 세종의 업적 중의 일부는 알고 보면 그들의 노력일 수 있다. 특히 장자였던 문종의 업적이 알게 모르게 컸다. 

 

세종은 태종의 양위로 2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문종은 세자에 책봉된 이래 30년 가까이 세종의 그늘로만 살다가 1450년에 세종이 죽고나서야 왕이 된다.

 

세종은 죽기 전 병석에서 문종의 병약함 때문에 고민한다. 평생을 보필한 세자이니 만큼 세자를 바꿀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고, 가만 두자니 문종이 너무 약해서 오래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문종이 죽고 나면 어리디 어린 세손 홍위(후에 단종)를 수양을 비롯한 다른 아들들이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어느 날 자신의 신하들, 우리가 아는 집현전 출신 신하들을 조용히 불러 세손을 부탁한다. 그들이 후에 단종을 끝끝내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벼슬을 버리고 은닉해버린 사육신과 생육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

 

세종이 그토록 걱정하던 문종은 즉위 후 딱 2년 병석에서 왕으로 버티다가 결국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는다. 열여덟 명이나 되는 아들을 둔 아버지 세종과 달리, 그림자로만 살았던 문종에게는 1남 1녀가 전부였고, 아들 단종은 왕이 되기에 너무도 어린 열한 살 나이에 즉위하게 된다. 이후에 단종은 세종의 걱정대로, 세종의 걸출한 아들들 중에 한 명, 수양대군(후에 세조)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문종의 또 다른 자식인 경혜공주도 결국 나락에 빠지게 되니, 차라리 문종이 세자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비극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찰스 왕세자의 눈물을 보면서 아버지를 보내는 아들의 서운함과 함께 그의 회한도 읽는다. 95세 생일을 맞는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음 공식 일정은 5월 11일이다. 이날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함께 의회에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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