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타인을 돕는 기술

by 비르케 2021. 1. 22.
300x250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책을 산 것은 꽤 오래됐는데 띄엄띄엄 읽게 되었다.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 몇 개는 정말 최고이고 또 더러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중에 이 책은 중간 정도.. 

 

뭔가 서정적인 이미지일 것 같은 제목이나 겉표지와 달리, 첫 부분부터 3인조 강도가 등장한다. 

쇼타, 아쓰야, 고헤이 세 사람은 '환광원'이라는 고아원 출신 친구들로, 환광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지으려 하는 '무토 하루미'라는 여자를 해코지하려고 그녀를 결박하고 그녀의 집을 턴 다음 도망을 치는 길이다.

 

그러다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든다.

나미야 잡화점을 하던 노인이 죽고 난 이후 그곳은 폐가가 되어 있다. 

 

세 사람이 들어가자 그때부터 정체 모를 편지들이 우유상자에 던져진다. 

 

그들은 이내 나미야 잡화점이 과거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받고 있는 편지와 그들이 보내는 답장은 과거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던 셈이다. 

 

과거 나미야 잡화점이 아이들로 북적이던 때, '나미야'를 '나야미(고민)'로 바꿔 부르는 아이들 때문에 장난으로 시작한 고민 상담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할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도 그 고민 편지들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고민 편지들 속에는 답변이 비교적 쉬운 고민도 있다. 

 

모스크바 올림픽(1980년) 출전을 앞두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 '달토끼(편지에 사용한 별명)'가 편지에 쓴 고민, 올림픽에 출전할 것인지 아픈 남자 친구 병간호를 할 것인지에 대해, 올림픽 출전보다 남자 친구 병간호가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보이콧으로 일본의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함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나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호스티스 일까지 하고 있는 '길을 잃은 강아지(별명)'에게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벌라고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1980년대 일본 부동산 버블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생선가게 뮤지션의 편지

 

우오마쓰(魚松) 생선가게를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의 장남이지만 가업 대신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생선가게 뮤지션(별명),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하는 가족과 함께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폴 레논(별명)',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는데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그린 리버(별명)' 등,

다른 사람에게 충실한 조언자가 되기 위해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댄다.

 

강도짓을 하고 도망치던 3인조 강도가 잠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결국 '길을 잃은 강아지'가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무토 하루미'였음을 알게 되고, 자신들의 오해로 빚어진 일들을 마무리하러 원점으로 돌아가는 데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편지를 쓴 인물들과 현재의 사람들이 연결되고, 편지 속 인물들끼리 서로 과거 속에서 연결되고, 일부는 현재와 연결되기도 한다.

분산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도 고아원 '환광원'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인물과 사건을 정해진 틀 안에서 얼기설기 잘 엮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 소설에서는 사실 좀 어지럽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읽다 말다 했다. 

 

그중에 '생선가게 뮤지션'과 '폴 레논' 관련된 이야기가 내겐 그래도 흥미로웠다. 

 

생선가게 뮤지션:

오랜 가업을 잇는 대신에 음악을 하겠다 선언해 집안에 풍파를 일으킨다.

그것도 모자라 다니던 대학까지 중퇴하고 음악에 몰두한다.

그러나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다. 뮤지션으로 살기에 그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던 것.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가업을 이으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반대다.

원하던 뮤지션이 꼭 되라고.

그런데 다른 불행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폴 레논:

'우에마쓰'의 단골 중 한 사람이 폴 레논의 어머니였다.

원래 엄청난 부자였던 폴 레논(본명:와쿠 고스케)의 가족이었지만 나중에 부도를 맞게 된다.

빚쟁이들을 피해 달아나면 끝이었던 시대라서, 고스케의 가족들도 야반도주를 감행하게 된다. 

도망치는 부모를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썼던 고스케,

나미야 잡화점에서 받은 편지에, '가족이라면 한 배를 타야 한다'는 식의 조언이 있었기에 부모를 따른다.

 

그러나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아버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약한 모습을 보인다.

고스케가 집을 떠나기 전 자신의 물건을 판 돈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

그 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아끼던 음반들을 친구에게 거저 주다시피 하고 받은 만 엔이었다.

지금 기준 10만 원 남짓한 돈이다. 

그 돈을 달라며, 안 주면 앞으로 용돈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미워 주변에 세워진 트럭 뒷칸을 택한 고스케.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 4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부모님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 그다. 

 

고스케는 당시 아버지가 행여 잡힐까 봐 고아원에 들어갈 때까지 자기 이름을 철저히 숨겼다.

그러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아들이 자신의 빚을 떠안을까 봐 자살을 감행하면서도 아들 포함 온 가족이 함께 죽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들은 한 배에 탄 가족이 맞았다.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편지를 보낸 사람들,

그들의 고민에 진지하게 답을 해주는 나미야 잡화점.

 

나미야 잡화점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도 무시하기도 하면서, 결국 나미야 잡화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한다.

 

나미야 잡화점의 존재가 빛나는 이유는,

어쩌면 해결하기 힘든 고민들을 대신 풀어주어서가 아니라,

해법의 실마리들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해주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같은 거다.

 

그 누구라도 아이를 낳는 일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라면 산모 옆에서 각각의 위험한 상황에 맞는 액션을 취해줄 수는 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 아이를 낳는 사람은 결코 산파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 따르면,

누군가 해법을 물을 때, 오히려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 수학적 질문이다.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누가 알려줄 필요 없이, 스스로 답을 찾는 거다. 

해법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특정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그 속에서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세 사람이 삶을 알아가는 과정,

자신의 범주를 떠나 타인을 위한 해법을 찾아가는 데 집중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기적을 만드는 것은 여기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