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한강변을 산책할 때였다.
벤치 위에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었다.
소설 < 작별 > - 한강
소설가 한강의 '작별'이라는 작품이다. '작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느 날 눈사람으로 변한다. 약속 장소로 가던 길에 시간이 좀 남아서 벤치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였다. 그녀가 만날 사람은 그녀의 연인, 눈사람이 된 그녀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녀 곁에 머물러주던 그였다. 가난한 그와의 데이트는 늘 비슷하다. 그가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 주변으로 와서, 함께 식사하고 천변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눈사람이 되어 있다. 그러니 함께 식사도 할 수가 없다. 가난한 그를 위해 계산을 도맡아 하던 그녀는 이제 그에게 밥값을 낼 돈을 건넨다. 그가 무안해 할까 걱정도 하면서. 같지만 다른 느낌,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늘 하던 대로 손을 잡는 두 사람. 손이 녹을까 봐 걱정을 하는 그녀.. 정작 그가 먼저 손이 시려 손을 뺀다.
같은 듯 많이 다른 그와의 데이트처럼, 자신이 홀로 키운 아이 윤이를 마주 하는 일도 갑자기 낯설어진다. 엄마 품을 떠나려는 사춘기 아들을 껴안아주고,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아이와 끝말잇기를 한다. 아이를 깊이 안을수록 그녀의 심장은 녹아들고, 대화는 끝말잇기만큼이나 단발적이다.
상대를 안을수록 점점 녹아 사라져 가는 그녀와, 그녀를 위해 잡았던 손을 놓아주고, 온기가 새어 나오는 문을 닫아야 하는 두 사람.. 모든 것이 있는 따뜻한 집을 뒤로한 채 그녀가 작별을 위해 돌아선다.
한강의 '작별'은 1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버지 한수산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한강은 더 특별하다. 자고 일어나니 몸이 변해있었다는 주제는 책이든 영화든 참 많다. 길을 걷다가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 벤치에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인데 몸이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 어쩐지 그녀만은 잠깐의 백일몽에서 깨어나 벤치에서 얼른 몸을 일으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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