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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야채칸을 열어 사과 하나를 꺼내 먹으려다 놀랬다.
새 사과를 넣어둔 곳 안쪽으로 오래된 사과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처음 나오는, 달콤한 향이 나던 아오리 풋사과가 푸른색 그대로 말라 있었다.
새 사과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몹시도 쭈글거리는 모양새다.
이걸 보고 있자니, 어느 그림책에서 본 채소들이 연상됐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라는 '안체 담'의 그림책,
어린이들의 눈으로 시간을 해석해 놓은 책이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또렷한 색을 지닌 단단한 채소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다.
멀겋고 탄력이 사라진 모습으로.
시간이라는 것은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금(time is gold)' 이라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은 '쏜살(=쏜 화살) 같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같다'고도 말한다.
전광석화란, 돌과 돌이 부딪칠 때 번쩍 튀는, 찰나의 불꽃이다.
짧으면서도 강렬한 순간을 뜻한다.
싱그럽던 사과가 말라가듯이, 누구도 시간은 거스를 수 없다.
한쪽의 사과는 시들어 있지만, 그렇기에 새 사과를 즐겁게 먹으면 되는 거다.
시든 사과, 지나간 시간에 집착할수록 시간은 사람을 옥죄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대주(對酒)'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나 보다.
"인생 그까짓 거 금세 지나가니 기쁘고 즐겁게 살라"고.
"입 벌려 하하 크게 웃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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