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처럼 쓰겠다고 다짐한다는 그의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그 다짐처럼 솔직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 하나하나가, 아무나 말로 능숙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대변한다. 타고난 이야기꾼 맞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문상훈
문상훈이라는 사람이 누굴까 찾아봤더니만, 배우 겸 유튜버라고 되어 있다.
방송, 유튜브, 인스타계정 할 것 없이 두루두루 영향력을 갖춘 팔방미인인데, 글도 맛깔난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제목 뽑는 감각까지 범상치 않다.
어릴 때는 아직 간지러워서 못 쓰고,
그 또래가 되면 괜히 싱거워서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 쓰는 단어.
'ㅊㅊ'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작되는 이 글, 청춘에 대한 언급이다.
생각해 보니, 내 어릴적에 '청춘'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세상모르던 초딩은 그 노래를 닳도록 부르며 '청춘', '청춘' 해댔었다.
그 이후로는, 청량리~춘천가는 청춘 열차를 두고서나 '청춘', '청춘' 해봤을까.
정말로 간지러워서, 싱거워서,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 쓰는 단어 맞다.
안경은 한 번 쓰면 돌아갈 수 없고,
한번 거슬린 손톱 위 거스러미는 자꾸만 만지게 되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생각은 한 번 들면 생각하지 않기가 힘들어요.
너무 잘 보려 하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버거워진다고 그는 말한다.
말도 고르게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신경도 쓰고.
안경을 껴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안경을 한 번 끼기 시작하면 벗기 어렵다는 것.
특히나 성장기에는 안경알을 갈아끼울 때마다 시력이 더 나빠져 있다.
도수만 올라가고 눈은 교정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희한한 현상.
(안경점에서는 부인하겠지만.)
조금 덜 보이더라도 안경을 안 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일을 축내서 오늘의 아쉬움을 희석하는 사람들.
나는 밤이 되면 당신들의 밤도 나 같은지 궁금하다.
사실 나도 밤을 즐기는 사람 중 하나지만, 지금은 밤이 예전과 좀 다르다.
예전엔 12시가 넘으면 TV방송도 끝이 났다.
아쉬운 사람들은 애국가까지 듣고 '지지직~' 화면에 암전이 올 때까지 봤다.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인터넷이 안 될 때였으니 밤이 오면 대부분 일찍 잤다.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은 정말로 밤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늦게 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밤에도 놀 게 많으니.
계속 놀고 싶은 게 아닐까.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 다 자는 밤에 홀로 누리던 적막은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하고 싶은 말일수록 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달이고 달여
한 방울로 만들어 내면
그것이 한 행이다...
그래서 시집은 너무 뜨거워
맨손으로 냉큼 잡을 수가 없다.
학교 다닐 때, 시의 성격이 나오면 거의 들어가던 단어, '함축성(함축적)'.
'시간을 달이고 달여 한 방울로 만들어낸 것이 한 행'이라는 표현을 보며, 시와 시인을 대하는 문상훈 작가의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길 걸으며 마음 가는 대로 써낸 편한 글 같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세련되고 멋지다.
'간질간질', '뭐였더라..' 하는 감정들을 딱 잡아내, 글로 잘 표현해 낸 좋은 책이라 생각하며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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