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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내게도 할머니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by 비르케 2009.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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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빨리 빨리 흘러, 내가 빨리 할머니가 되어버리면 좋겠단 생각이요. 그때는 노년의 슬픔이 뭔지 잘 몰랐고, 주름이 뭔지 몰랐으며, 뻣뻣해진 다리에 가해지는 고통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마치 인생이 인고의 바다인양, 빨리 빨리 세월이 흘러가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데, 놀라운 것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을 살아오며 여러번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년을 맞이하고 나면 대체 뭐가 더 나을 것 같았는지 구체적으로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인지, 혹시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시는 분 있으십니까?

며칠 전,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다 겪은 작은 일입니다.
 

버스는 그날따라 도착시간에서 5분을 넘겨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안내 전광판에 의하면, 순서상 제가 탈 A버스가 도착했어야 했는데, A버스 대신 그 뒤에 와야 맞을 B버스가 A버스보다 먼저 도착을 하더군요.

전광판만을 믿고 A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대오는 순간 흐트러지고, B버스를 탈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새로운 줄을 만들었습니다. (독일 전역이 버스에 달린 세개내지는 네개의 문으로 한꺼번에 사람을 태우고 있지만, 유독 제가 사는 이 도시에서만 작년부터 앞문으로만 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길다란 버스에 사람을 다 싣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혼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A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이었습니다. 버스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일부러 정류장 간이의자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서 미리 줄을 서 계셨던 것이었죠. 그러나 대오가 흐트러져 버리고 나니 순간 낭패라도 당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B버스가 아직 사람을 싣고 있는 상황에, 그 뒤로 드디어 A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뒤로 몰려가기 시작하더군요. 그 순간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왜 뒤로 갈까요?"
"그러게요, 정류장은 여긴데..."
뒷쪽까지 뛰어가지 못 하는 두 할머니의 음성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 겪으셨죠? 앞에 정차한 다른 버스때문에 정류장에 진입하지 못 한 버스가, 뒤쪽에서 문을 열어 사람을 태우게 되는 경우, 겨우 달려가면 순간 문을 닫고 앞쪽으로 전진해 버리는 경우요. 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상황들이 할머니들께는 작은 두려움이었던가 봅니다. 


"뒤로 가 봐야 할까요?"
"여기서 한번 더 서겠죠. 이제까지 줄도 서 있었는데..."

참 아이처럼 순진한 할머니들의 이야기, 외국인인 저도 당연히 버스가 정류장에 와서 설 거라는 걸 점치고 있는데, 누가 언젠가 할머니들께 이런 불안함의 동기를 부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A버스는 예상대로 몰려온 사람들은 저버린 채 서 있다가, B버스가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앞쪽 정류장에 와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순간 할머니들의 아이같은 들뜬 음성이 다시 들려옵니다. 

"버스가 앞쪽으로 와주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시 엉성하게 줄이 만들어지고, 그 음성을 따라 고개를 돌려 할머니들께 제 앞쪽을 양보해 드렸습니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머리는 온통 백발인 할머니께서 고맙다며 제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습니다. 

순간, '내게도 주변에 이런 할머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으로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독일에 살 때는 개인 주택에서 방 하나를 세 살아보기도 했고, 독일 친구들 세명과 함께 집 하나를 빌려서 살아도 보았고, 기숙사에서도 살아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 중, 개인 주택에서 살던 때 독일인과 가장 많은 접촉이 있었지요.

당시 집주인은 '프리스'라는 이름의 칠순 할머니셨는데, 자주 다과를 준비해 놓고 집에 사는 학생들을 불러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그때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할머니로 인해 많은 걸 배웠었는데, 지금은 독일에 있어도 그런 접촉이 거의 없이 살고 있으니, 길에서 만난 할머니마저 정에 겨웠던 것일까요. 


버스가 자신을 태우지 않고 스쳐가버릴까 두려워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어쩐지 노년의 쓸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독일은 나이든 분들을 덜 '제외'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에서 마저도 나이가 든다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아는 이 별로 없는 쓸쓸한 외지인인데, 저런 할머님의 말벗이라도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른이기에 외로운 사람끼리도 부대끼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아이들은 그러죠, "너 이름 뭐야?", "어디서 왔어?", "몇 살이야?", "어디 살아?"...
어른은 그럴수도 없고, 오늘처럼 그저 할머니 친구 한 명 사귀고 싶으면 어찌 해야 할까요?
가끔은 막막하거나 힘들 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저보다 더 오래 산  누군가가 그립습니다. 
모르는 것도 일러주고, 등도 두드려 주던 그 옛날 '프라우(미시즈) 프리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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