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뜨거운 삶을 불태우고, 사라질 때도 남을 위해 다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는 이런 고귀한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연탄'이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의 세 줄짜리 좋은 시
안도현 시인의 후기에 따르면, 이 시는 1990년대 초반 전교조 해직교사 시절에 쓴 시라고 한다. 시인 스스로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살던 때라고도 말한다.
연탄은 검정색 정형화된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불꽃에 몸을 다 사르고 나면 희끄무레한 재로 변한다. 연탄 두 개나 세 개를 겹으로 올리고, 그중에 가장 아래 꺼져가는 연탄을 꺼낸 다음, 다시 맨 위에 새 연탄을 놓는 방식을 되풀이하며 연탄난방을 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꺼진 연탄재는 그로써 생명을 다했지만, 눈이 내리는 날이면 부서진 채 바닥에 뿌려져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역할도 해주었다.
다 탄 연탄재를 문밖에 두면 쓰레기 치우시는 분들이 알아서 수거해가곤 했는데, 그러라고 밖에다 내놓은 연탄재를 때로는 행인들이 발로 걷어차는 일이 잦았다. 특히나 밤동안에는 취객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검은색 새 연탄에 비해 다 탄 연탄은 살짝만 스쳐도 파삭파삭 부서져버린다. 그러니 다 탄 연탄은 여기고 저기고 골목에 뒹굴고 있는 때가 많았다.
온 힘을 다해 타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뜨거운 온기를 전하고, 다 타고 나서도 이렇게 깨지고 부서지며 희생하는 연탄 같은 삶에 대해 시인은 다른 여러 편의 시에서도 한결같이 칭송했다. 그리고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한 스스로가 밉다고도 했는데, 그런 연탄재를 차는 사람은 더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지 모를 대상에게 따지듯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시의 갈래에 대한 부연
학생들에게도 유용한 시인데, 아주 간단한 부분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시의 갈래는 내용상 서정시, 형식상 자유시다. 시는 내용상 분류, 형식상 분류, 목적상 분류, 태도상 분류로 나뉘지만,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내용상 분류와 형식상 분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1. 내용상 분류: 서정시, 서사시, (극시)
학생들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들 대부분은 서정시와 서사시다. 그중에 영웅이나 신적인 존재의 스토리가 서사시다. 그러니 서사시는 현대시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나머지는 대부분은 서정시다. 서정시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서가 주가 되는 시다. 참고로 극시도 현대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극(=연극)적 요소가 들어간 시다.
2. 형식상 분류: 자유시, 정형시, (산문시)
정형이란 말은 '형태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율격, 흔히 말하는 '라임'을 갖고 있다. 시조가 대표적이다. 운율이 바깥에 있으므로 외재율(외형률)에 속한다. (정형시→ 외재율, 외형률)
반대로, 자유시는 정해져 있는 율격이 없다. 즉 라임이 강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글이 아니라 시이기 때문에 글 안에서 운율이 느껴진다. 이게 내재율이다. (자유시→내재율)
부연 속에 또 부연
- 외재율, 외형률, 내재율
어떤 때 '율을 쓰고 어떤 때 '률'을 쓸까?
맞춤법까지 기계가 다 잡아주는 세상이지만, 간단한 이해만으로 일상에서의 실수도 줄일 수 있다.
★ 받침이 없거나 ㄴ받침 + 률 → 율
ex. 내재율, 외재율, 백분율, 건폐율...
★ 받침이 있는 경우(ㄴ받침 제외) + 률 → 률
ex. 외형률, 용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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