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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도장, 좋은 도장

by 비르케 202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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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런 가게 보기가 힘들어졌다. 도장도 파고, 명함이나 각종 스티커, 청첩장, 상패 등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운영이 어려워 사라져 가던 업종인데, 이번 전염병 사태는 또 다른 파장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다른 제품도 그렇지만, 특히 도장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더 싼 가격에 디자인도 특이한 제품들이 많다.

과거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듯, 간판 맨 앞에 '도장'이 자리 잡고 있음에도 지금은 얼마나 찾을까 싶다. 

 

내가 쓰고 있는 도장은 뿔 도장이다. 내것과 비슷한 것을 인터넷으로 얼른 찾아보니 만원 이하 가격에, 디자인도 많고 글씨체도 맘에 드는 걸로 손수 고를 수 있다. 굳이 특정 도장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요즘 '신박하다'는 표현에 걸맞은 예쁜 도장들이 즐비하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앞에서 급하게 팠던 내 도장. 이 도장으로 많은 걸 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에서는 글쓴이가 시간 없다고 아무리 졸라도 끝까지 전성 들여 방망이를 깎던 방망이 장수가 등장하는데, 나의 재촉에 급히 깎은 내 도장은 글씨가 엉망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 도장을 버리지 못했던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이 도장으로 했던 많은 것들 때문이다. 소소하게 투자라는 것을 하면서 나와 함께 다녔던 도장이고, 아이들 기르면서 학교에서 엄마 도장 받아오라는 서류에 부지기수로 찍어대던 도장이었다. 더군다나 그 엉망으로 깎아놓은 글씨체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만든 도장의 글씨체가 이미 있는 글씨체라서 거기서 거기인 것과 반대다.

 

언젠가, 돌아다니면서 도장을 직접 파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상대의 사주를 봐주고 그 사주에 맞는 도장을 권했다. 도장보다 사주에 더 관심이 갔지만, 결국은 그 사주에 따라 권해주는 도장을 안 사기 어렵다. 꼭 믿어서가 아니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좋은 도장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주 봐준 값인지 도장 값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도장은 결코 싸지 않다. 

 

내 도장을 본 그가 말했다. 나와 크게 맞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고. 하지만 더 큰 운을 바란다면 도장을 다시 파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대운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내 도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정도의 운만 늘 함께 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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