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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매운탕 보며 떠오르는 기억

by 비르케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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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을 주문했다. 매운탕 뚝배기가 불판에 얹히고 미나리 향이 더 강렬해지니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뵌 지가 오래된 외삼촌과의 추억이다. 어릴 적에 잠깐 외가에 살 때 나는 삼촌을 졸졸 따라다녔다. 삼촌이라고는 해도 나와 열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삼촌이다

 

삼촌은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는 나를 데려가지 않았지만 붕어 잡으러 갈 때는 따라오게 내버려두었다. 삼촌을 따라가는 길에 꽃도 따먹고 우산풀 따서 우산도 만들고 풀피리도 불었다. 삼촌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때면 옆에서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놀았다.

 

맨들맨들한 돌들이 바닥에 깔린 냇가에서 물에 반사되는 햇살의 일렁임을 보는 게 좋았다. 그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유연한 몸놀림도 재미있었다.

 

 

"삼촌 이게 뭐야?"

발등에 붙어 있는 까만색을 보고 물었는데, 삼촌이 거머리란다. 거머리가 뭔지도 몰랐는데, 삼촌이 손으로 거머리를 떼니, 빨판처럼 쪽~ 하고 떨어지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물살에 섞이던 선홍색 피.

 

어렸을 때 내 발등에는 사마귀가 있었는데, 누군가 실로 묶어두면 사마귀가 떨어져나간다고 해서 실로 칭칭 묶어두니 점점 파랗게 변해갔다. 그리고는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렇게 얼마간 두었더니 살살 겉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붉은 죽은 피가 흘러나왔다. 사마귀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해지다 보니 그 피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흐물흐물해진 사마귀는 주르륵 아무 힘없이 벗겨져 떨어졌다. 이미 그 속에는 새 살이 차고 있었다. 

 

딱 그 사마귀가 있던 자리에 거머리가 붙어 있었다. 주변의 살보다 더 연해서 였을까. 거머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흘러나온 선홍색 피를 보니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훌쩍훌쩍 울고 말았다. 삼촌이 으하하 웃으며 괜찮다고 하더니 다시 붕어, 피라미를 잡았다. 

 

그러다가 메기를 잡았을 때 으하하 방금처럼 다시 웃었다. 기뻐하던 삼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삼촌은 호박잎을 따서 바닥에 펼쳐놓고 물고기를 손질해 내장을 호박잎에 싸서 버렸다. 그렇게 손질한 물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오면 외할머니가 이거저것 넣어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그 매콤하고 진한 매운탕 맛이 가끔 생각난다. 

 

정작 매운탕을 먹으러 와서는 수제비와 야채, 국물 위주로 먹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런데 나는 국물이 좋고 미나리나 버섯이 좋고 수제비가 좋다. 메기, 쏘가리, 빠가사리 등 민물고기의 익은 살은 먹긴 먹되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매운탕 국물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어릴적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먹던 매운탕만큼 맛있는 매운탕은 아니지만,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다들 기억 한 자락을 붙들며 산다고 한다. 삼촌에 대한 나의 기억도 붕어 잡으러 가던 때의 신나고 가슴 벅차던 두근거림이다. 삼촌께 애써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억은 기억일 때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 이렇게 매운탕 국물이라도 홀짝거리면 되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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