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강 다리에 관한 포스팅을 하면서 성수대교에서 '번쩍'하고 기억 하나가 떠올랐기에 옮기고자 한다.
이 카테고리 자체가 '시간을 거슬러'다. 그저 개인사적으로 단편적인 기억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정작 기억이라 말할 만한 특별한 사건은 아님을 전제한다.
그때 나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던 중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태워줄까?"
차 안에 어느 노신사께서 물으셨다.
그때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태워주는 운전자들이 많았다.
고마운 마음에 선뜻 차를 얻어 탔고, 뒤이어 따라붙는 익숙한 질문이 날아왔다.
"어디에서 왔니 Woher kommen Sie?"
외국에 있다 보면 당연히 받는 질문이었다.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대부분 두 어절이다.
"한국, 남한 입니다 Aus Korea, Süd Korea."
'한국'이라고만 말하면 당연히 남한이냐 북한이냐가 따라붙었기 때문에 아예 두 번 할 대답을 한 번에 하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돌아오는 말은, 남한과 북한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 독일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두 나라 간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독일 또한 동서로 나뉘어, 동독 서독 하던 때가 있었다가 1990년 통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아 그렇구나, 근데 어떻게 다리가 무너질 수 있니?"
노신사의 말에 한참 의아했다.
나는 그때 성수대교 붕괴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아예 접하기 힘든 가난한 유학생이었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라디오는 '라디오 레겐보겐'이라는 지역 채널에 맞춰져 정각에 하는 3~5분짜리 뉴스를 듣는 게 다였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알 도리가 없었다.
노신사의 말이 한국전쟁때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가, 갑작스럽게 왜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을 이야기할까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느라 대답을 늦추고 있었다.
그 노신사는 내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자기 조국의 민낯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인터넷이고 뭐고 없을 때다.
내가 설령 성수대교 붕괴에 관한 뉴스를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 노신사가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었을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번에 성수대교를 지나며 찍었던 사진을 보니 기억이 무뎌질 만큼 빨간색 페인트로 예쁘게도 치장을 했다. 사람이 만든 거라 언제든 사고의 위험을 간과할 수 없지만, 그런 참사급의 불행은 더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왔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두 구간에 걸쳐 전철이 개통됐다. 시민들의 발, 전철은 가장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 자주 이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안전에도 더 각별히 신경 써주었으면 좋겠다 하며 안전에 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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