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된 오래된 사진들 중에 친구가 나 몰래 찍어준 사진이 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때였는데, 그때 나는 어느 베지테리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 간이식당이었는데, 뷔페에서 흔히 보는 커다랗고 네모난 스테인리스 트레이에서 손님들의 주문대로 음식을 덜어서 담아주는 게 그때 내가 하던 일이었다.
먹고 갈지 테이크아웃할지, 원하는 소스, 원하는 부위 등을 묻고 난 다음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음식을 덜어주었다. 날마다 메뉴가 바뀌었기 때문에 재료가 뭔지 알아야 해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랑 이야기 할 일도 많았다. 덕분에 웬만한 서양 식단과 소스 종류는 꽤 알고 있다.
때로 까칠하게, '베지테리안 식당에 계란 프라이가 웬 말이냐'고 쓴소리를 하던 손님도 있었고, 또 때로는 '많이 달라'는 어르신의 속삭임에 용기 가득 담아드리고 계산대 눈치를 보던 때도 있었다. 계산대를 맡고 있던 주인은 40대 여성이었는데, 따뜻하고 마음씨도 고와서 그런 걸로는 뭐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게 매일 식사도 제공하고 집에 초대도 해주었다. 그 가게 아르바이트들 중에 식사까지 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식당 맞은편에는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과 이 식당은 큰 통창을 마주한 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그 서점에서 친구가 이 사진을 찍었다. 두꺼운 유리를 두 개나 통과해서 얻어진 사진이다.
사진 속에, 접시를 든 채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바쁜 모습의 내가 있다. 이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그 식당이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늘 궁금했었다.
그로부터 10년쯤 뒤, 그러니까 2009년도에 다시 그 식당이 있던 곳을 찾았을 때 식당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얼굴과 이름까지 생생한 그곳 직원들도 이 골목에는 없었던 것이다.
또 시간이 지나 2021년 오늘, 2009년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주황색으로 정육점이라 쓰인 저 건물이 식당이 있던 자린지, 그 옆 빨간 차양이 있는 건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이럴 때 구글 지도가 도움이 많이 된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빨간 차양이 있는 저 건물이 맞다. 친구가 나를 찍었던 서점은 2016년 정보가 뜨는데, 그곳도 1유로 샵으로 바뀌어 있다.
구글 지도로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간이식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정보가 남아 있는 2016년 당시 태국 식당으로 쓰였나 보다. 내가 일하던 때와는 다르지만, 저 건너편 건물과 창을 마주하고 있는 구조는 그대로다. 저편에서 친구가 내 사진을 찍었다. 창문 옆 바가 있는 부근에 그날의 내가 있었다.
언젠가 그 골목에 또 서게 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을 사진으로 기록해준 친구가 내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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