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부도를 아십니까 >, 아주 오래전 방송했던 어느 TV 단막극의 제목이다. 나는 제부도를 그 단막극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제는 웬만하면 다 아는 섬이 되었지만, 그때는 제부도가 유명세를 타기 전이라, TV를 보면서도 바닷길이 열린다는 그 섬이 당연히 가상의 섬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제부도, 황당 납치 사건
하루에 두 번씩 바닷길이 열려 '모세의 기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섬 제부도, TV 단막극 < 제부도를 아십니까 >의 내용도 제부도의 그런 점을 모티브로 했다. 어쨌거나 제부도는 바닷길이 닫히면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섬이니, 알고 보면 이런저런 사연들이 가득한 장소일 거라 생각된다.
< 제부도를 아십니까 > 란 단막극을 보았던 그 당시 20대였던 나는 업무차 직장 상사의 차에 탔다가 황당 납치를 당했다. 어딜 가는지 알리지도 않고 계속 주행하던 그놈님(?)에게 내려달라 화도 내 보고 통사정도 하다가 포기할 때쯤 차창 밖으로 '제부도' 이정표가 보였다. 그때의 그 오싹함이란... 앞서 말한 그 단막극이 두 남녀가 제부도에 갔다가 물이 들어오는 바다에 빠져 죽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이다. 함께 죽자고 제부도를 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저녁 물때를 이용해 들어가면 그날 밤 꼼짝없이 그 섬에 갇히게 됐었다.
그 일로 제부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놈님과의 이후는, 내가 그 단막극 덕분에 제부도란 섬이 물이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곳임을 알고 안 가겠다고 사정에 사정을 하고 설득에 설득을 한 결과 다행히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결혼생활에 지쳤다는 그놈님도 얌전히 자기 아내에게로 돌아갔다는, 그리고 다음날 나는 사표를 썼다는, 매우 황당하면서도 재미없는 스토리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는 불행히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제부도, 아름답지만 사고도 많았던 섬
제부도가 실재하는 섬임을 알고난 이후 2000년 전후로 한동안 제부도에 자주 갔었다. 그 당시에는 육지에서 제부도로 연결되는 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 바닷물이 오가기 때문에 수시로 파이고 보수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당연하지만, 그때는 지금에 비해 길과 개펄과의 단차도 거의 나지 않아 바닷길이 열려도 바닷물을 밟지 않고 지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바다 인근에는 하부 세차를 할 수 있는 곳들이 꽤 많았다. 현재는 모두 음식점으로 변해 있다.
또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물때 시간을 조회하고 찾아갈 수 있지만, 당시는 출발 전에 집전화로 ARS에 전화를 걸어 물때 시간을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미처 전화를 못하고 출발하게 되면 바다앞에서 꼼짝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곤 했다.
바닷물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지쳐, 아직 물이 다 빠지지 않았는데도 짠물 뒤집어써가며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건너는 차들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가다 보면 물이 점점 빠지게 되니 섬까지 안전하게 도달이 가능했다. 문제는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도 그런 식으로 무리하게 바닷길을 지나는 차들이었다. 생각보다 물은 빨리 차오르고 그렇게 물길을 건너오다가 변을 당하는 사고들이 자주 반복됐다.
언젠가부터 바닷길 통제소가 생겼다. 이 사진은 2013년 8월에 찍은 사진인데, 한때는 이곳에 이렇게 톨게이트가 있어 통행료를 내고 지나가야 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다시 통행료가 없어졌는지 "무료통행"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태양의 위치로 보아 아마도 섬에서 나와 찍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지도 로드뷰를 보니 2008년부터 기록이 있다. 캡처한 사진을 보면, 2008년에는 통행료를 내고 통과했었다(왼쪽). 2014년까지 톨게이트가 있고, 2016년부터는 톨게이트가 철거되어 지금처럼 길이 개방돼 있다(오른쪽).
바닷물이 빠져나간 제부도 바다에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해변의 여인 한 분이 우산으로 해를 가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살짝 찍어보았다. 누군가는 조개 좀 캐보겠다고 뻘밭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 또 누군가는 이렇게 물이 빠져나간 바다와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처음 내가 제부도를 찾았던 2000년 전후에는 톨게이트가 있던 부근에서 호미나 쇠스랑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호미 같은 걸 사서 조개를 잡겠다고 나도 뻘밭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발은 개펄에 자꾸 빠지지, 태양은 뙤약볕이지, 하늘을 보니 금세 어질어질해졌다. 그래서 조개를 캐는 일이 생각보다 고단한 일임을 알고 있다. 아마도 다시 바다를 찾게 되면 나도 이 사진 속 해변의 여인과 같은 모습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라고 내 차 트렁크에 이보다 더 커다란 우산이 있다.
제부도 바닷길 통행 시간표
(제부도 물때 시간표)
( http://jebumose.invil.org/index.html?menuno=574248&lnb=3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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