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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드라마시티-감포비가(甘浦悲歌), 물새 우는 강 언덕...

by 비르케 2023.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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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스치듯 본 한 편의 단막극 '감포비가'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작품 속 삽입곡 '물새 우는 강 언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드라마 속 사건들이 이 곡과 함께 흘러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실제 '감포'에서 촬영되었고, 전체 스토리라인도 '비가(悲歌)', 딱 그 느낌이다.  

드라마시티-감포비가(甘浦悲歌), 물새 우는 강 언덕...

드라마시티 감포비가, 박용하, 박은혜 주연

감포비가
방영: 2000년 KBS 드라마시티
출연: 박용하, 박은혜, 정동환, 오지영, 이미지, 안해숙 등

'TV문학관', '베스트극장', '드라마시티' 등으로, 단막극 전성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하나둘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보이길래 이 작품을 진작부터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물새 우는 강 언덕'이라는 곡이 세월이 오래 흐르도록 이 작품의 여운과 함께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꼭 다시 보고 싶었다.

 

주인공 '성수' 역은 박용하다. 그가 극 중 '미순'의 창문 아래 서 있다. '미순' 역할은 박은혜가 맡았다. 故이미지, 정동환, 안해숙 등의 명품연기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포비가' 대본상의 작의

이 드라마를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대본으로도 읽어보았다. 그래도 드라마로 느낀 감동은 드라마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작가는 작의를 통해, "아~~" 하면서, "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그 감정에 관해 써보고 싶었다"라고 한다. 또한, "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가슴이 저려오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이 작품도 유튜브에 올라왔다. 주인공들의 모습도 아슴하게 잊혀가는 마당에, 다시 새롭게 유튜브를 통해 이 작품을 본다. 작가의 작의마따나, 20년도 더 지나 이 작품을 보니, 이런저런 이유(그는 또 왜 가버렸는지..)로 더욱... "가슴이 저리지... 않을 수가..."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슬픈 사랑의 테마는 어디에고, 어떤 시절에고 있었다. 주인공 성수는 사법고시생으로, 집안도 좋고 품성도 좋지만 그에게는 어머니의 빈자리가 있다. 그리고 미순은 깡촌에서 태어나 혈혈단신 도시로 나와 남의집 식모살이를 하며 살아가는 처지다. 그들의 사랑에 벽이 없을 리 없다. 

 

 

작품의 도입부. 성수가 술에 만취해 빗속을 걷는데, 골목길 어느 창문에서 기억속의 노래, '물새 우는 강 언덕'이 흘러나온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가 즐겨 듣던 축음기 소리였다. 그의 어머니는 극단 가수로, 아버지가 몹시도 사랑해 첩으로 들어앉히고 싶어 했던 여자였다. 그러나 답답한 시골에서 살 수 없던 자유로운 영혼이라 결국엔 어린 성수를 두고 떠나버린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축음기에서 들려오던 노랫가락으로만 남았다.  

 

대본을 통해 보면, 그날 성수가 왜 술에 절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함께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 중 한 명이 시험에  패스를 했고, 그 친구를 위해 축하주를 마시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성수는 그 친구가 시험에 붙은 게 부러운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모습이 몹시도 부러웠다. 자신은 한 번도 삶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음에. 그런 이유로 그는 연거푸 술을 마신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이끌려 성수는 결국 남의집 방문을 스르륵 열고 만다. 그곳에 미순이 있다가 깜짝 놀란다. (지금이었더라면 바로 신고감인데) 친구집으로 착각했다며 사과를 하고, 집주인을 향해 혹시 남는 방이 있는지 묻게 되어 그 집에 세를 들게 된다. 아버지가 얻어준 방을 맘대로 빼서 수레에 세간살이를 실어오는 성수... 슬픈 사랑의 시작이다. 

 

 

감포비가_박용하, 정동환

 

"세상엔 만나지 않는 게 차라리 좋은 연분이 있는게다."

하며 성수의 생모에 관해 이야기하던 아버지가 돌연 화재를 돌린다.

 

"그 처녀 하고는 안 된다."

 

"젊어 혈기에는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다 인 것 같겠지.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 마음은 세월 흐르면 다 사그라지게 마련이지.

그땐 후회밖에 남는 게 없어!"

 

 

감포비가-박용하, 김은혜

차마 말할 수 없는...

자동차 백미러로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등을 지고 혼자 울 수밖에 없는..

슬픈 주인공의 모습이 아픈 세월을 대변한다.

 

 

이 작품을 처음 본 게 아닌데도 눈시울이 붉어짐은 왜인지... 왜 착한 사람들은 슬프게 사는지... 진정 사랑하기에 비워둔 자리가 왜 온전히 차지 않는 것인지... 이쯤 되면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내게도 적중했음을 인정한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가슴이 저려온다는 그런.

 

극의 대강을 정리했지만, 되도록 한시간여의 명품 단막극들은 직접 시청하기를 권한다. 장편의 드라마들과 달리, 단막극들은 줄거리가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내외, A4 30매 전후 분량으로 이뤄진 짤막한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적절한 여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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