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독 수줍음이 많은 아낙이다.
시장 한편에서 야채를 파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전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다 변죽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
미소 같은 빛깔을 머금은 고운 마른고추
"제가 손이 이래서요, 대신 담아주시겠어요?"
다른 채소를 손질하던 중이었는지, 그녀의 손에 거무튀튀하고 진득해 보이는 뭔가가 잔뜩 묻어 있다.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웃는 그녀를 대신해 딸기대야에 담긴 상추를 봉지에 담는다.
곧이어 그녀의 손이, 옆에 있던 상추보따리에서 상추 한 줌을 쥐고 나오더니 이쪽으로 내민다. 딸기대야에 있던 것만큼의 상추가 덤으로 담겼다. 손님에게 담으라고 한 게 미안해서 더 준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덤에, 상추를 좋아하는 이는 너무도 감사했다.
며칠 뒤 시장에서 그녀의 노점을 다시 지난다. 붉은빛 마른고추가 눈에 얼른 들어왔다. 빛깔이 유독 곱다. 햇빛에 비춰 보니 씨가 듬성듬성하고 실하다. 살까 말까 하다가 다른 야채만 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서 다시 간다. 그런데 그새 그 고추가 다 팔리고 없다.
아쉬워하니 그녀가 말한다. 좋은 빛깔을 내려고 온도나 시간을 달리 해서 말려보는데, 이번에는 잘 나왔다고, 다른 손님이 몽땅 다 사갔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만들어서 연락을 주겠단다. 올해는 고추가 잘 돼서 상인들이 일제히 고춧값을 내렸다고, 좋은 고추지만 그 가격에 맞춰주겠다 한다.
사실 요즘은 완전한 태양초가 거의 없다. 보름을 햇볕에 의지했다가는 자칫 곰팡이가 생기거나 새 먹잇감이 될 수도 있고, 미세먼지때문에도 오히려 더 안 좋을 수 있다. 기계로 말리는 것도 나름의 방식으로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중에 좋은 건고추를 얻을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녀의 마른고추가 왔다. 하늘에 비춰보니, 말간 붉은빛이 돌고 씨가 별로 보이지 않는, 저번처럼 좋은 고추다. 수줍음이 묻어나는 그녀의 맑은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자기 자신이 지은 농사에 자부심을 가진 그녀, 햇빛이 그을린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의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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