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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마음을 담아..

한 사람 때문에

by 비르케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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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양하기에 각각의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뭔가가 있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들을 만나게 되면 꼭 뭔가를 사게 된다. 

그분들의 물건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꾹꾹 눌러 담아줄 것만 같아서다.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어느 번화한 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한 할머니가 야채를 팔고 있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그분의 좌판도 단출하다. 

딸기대야에 담긴 상추가 2천 원이란다. 

그 외 무말랭이와, 또 뭔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암튼 다른 분들 것보다는 양이 적다. 

집 근처 슈퍼에서 세일하면 천 원어치도 그 정도는 되는데...

그냥 산다. 

 

지나던 사람이 들여다보며 그게 얼마냐 묻는다.

2천 원이라 하자 그냥 간다. 

 

언젠가 장에서 찍은 사진 - 바람에 날리는 잔돈 묶음

 

 

그때부터다. 

할머니가 다른 분들과 다른 면을 보인게.

값을 묻고 그냥 간 사람을 두고 궁시렁거린다. 

계속 궁시렁거린다.

 

그러면서 상추를 담을 봉지를 꺼내려고 큰 봉지를 뒤적인다.

그리고 그중 가장 더러운 봉지를 꺼내든다.

 

그 봉지들이 한 번 사용한 것들이라는 건 나도 안다. 

대부분 노상에서 장사하는 분들의 봉지가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오물투성이인 봉지다.

 

 

 

기가 찬 와중에도, 그건 안 된다고 다른 봉지에 담아달라 한 마디 한다. 

나중에 씻을 거라도 일단은 먹을 게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차마 내게는 궁시렁거리지 않고 다른 봉지에 담는다. 

 

현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비상금으로 넣어둔 만 원짜리 두 장 중에 하나를 건넨다. 

할머니의 전대에서 5천 원, 천 원짜리들이 꺼내져 나온다. 

 

거스름돈 하려고 대부분 천 원권은 아끼고 5천 원권을 껴서 내주지 않을까.

이 할머니는 천 원짜리만 센다. 

 

여덟 장을 세고 또 센다.

맞다고 해도 다시 센다.

또 센다. 

 

그리고는 마침내 상추가 담긴 봉지와 잔돈을 얼렁뚱땅 쥐어준다. 

평소에 나라면 그냥 집어넣었을 텐데 이번에는 천 원권을 확인한다. 

여섯 장이다. 

 

돌아서서 말하려는데, 나머지 두 장이 할머니 손에 있다. 

다시 얼렁뚱땅 나를 향해 내민다. 

 

 

할머니가 세고 또 세서 건네준 천원권 여덟 장

 

 

어이없지만, 할머니라서 그냥 말없이 돈만 받아 돌아선다. 

이제껏 노상에서 장사하는 분들에게 물건을 사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그때 보았다. 버스가 들어오는 걸.

거긴 버스정류장이었으니까.

 

할머니가 이미 센 지폐를 또 세고 또 셌던 이유. 

손님에게 잔돈을 내줄 때 버스가 맞춰 왔어야 했던 것인가.

할머니에게는 아쉽겠지만, 나는 버스를 타지 않을 사람이었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 둔 상태였기에 서둘러 잔돈을 받아 버스에 오를 일도 없었다. 

 

 

잎이 작은 상추
겉절이나 해먹어야 할 것 같은 작은 상추들

 

집에 와서 보니 상춧잎들이 아까보다 더 작다.

무쳐먹을 거면 가져가라던 그 옆에 자잘한 상추도 있었는데,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상의 할머니들에게 사면 슈퍼 물건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더 얹어도 주고 깎아도 주고...

까만 봉다리가 참 정겨웠다. 

 

한 사람 때문에..

이제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품도, 그걸 담으려던 봉지도, 거스름돈도, 마음가짐도..

나이가 그토록 드신 분이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역시 다양한 사람이 사는 지구별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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