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양하기에 각각의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뭔가가 있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들을 만나게 되면 꼭 뭔가를 사게 된다.
그분들의 물건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꾹꾹 눌러 담아줄 것만 같아서다.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어느 번화한 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한 할머니가 야채를 팔고 있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그분의 좌판도 단출하다.
딸기대야에 담긴 상추가 2천 원이란다.
그 외 무말랭이와, 또 뭔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암튼 다른 분들 것보다는 양이 적다.
집 근처 슈퍼에서 세일하면 천 원어치도 그 정도는 되는데...
그냥 산다.
지나던 사람이 들여다보며 그게 얼마냐 묻는다.
2천 원이라 하자 그냥 간다.
그때부터다.
할머니가 다른 분들과 다른 면을 보인게.
값을 묻고 그냥 간 사람을 두고 궁시렁거린다.
계속 궁시렁거린다.
그러면서 상추를 담을 봉지를 꺼내려고 큰 봉지를 뒤적인다.
그리고 그중 가장 더러운 봉지를 꺼내든다.
그 봉지들이 한 번 사용한 것들이라는 건 나도 안다.
대부분 노상에서 장사하는 분들의 봉지가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오물투성이인 봉지다.
기가 찬 와중에도, 그건 안 된다고 다른 봉지에 담아달라 한 마디 한다.
나중에 씻을 거라도 일단은 먹을 게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차마 내게는 궁시렁거리지 않고 다른 봉지에 담는다.
현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비상금으로 넣어둔 만 원짜리 두 장 중에 하나를 건넨다.
할머니의 전대에서 5천 원, 천 원짜리들이 꺼내져 나온다.
거스름돈 하려고 대부분 천 원권은 아끼고 5천 원권을 껴서 내주지 않을까.
이 할머니는 천 원짜리만 센다.
여덟 장을 세고 또 센다.
맞다고 해도 다시 센다.
또 센다.
그리고는 마침내 상추가 담긴 봉지와 잔돈을 얼렁뚱땅 쥐어준다.
평소에 나라면 그냥 집어넣었을 텐데 이번에는 천 원권을 확인한다.
여섯 장이다.
돌아서서 말하려는데, 나머지 두 장이 할머니 손에 있다.
다시 얼렁뚱땅 나를 향해 내민다.
어이없지만, 할머니라서 그냥 말없이 돈만 받아 돌아선다.
이제껏 노상에서 장사하는 분들에게 물건을 사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그때 보았다. 버스가 들어오는 걸.
거긴 버스정류장이었으니까.
할머니가 이미 센 지폐를 또 세고 또 셌던 이유.
손님에게 잔돈을 내줄 때 버스가 맞춰 왔어야 했던 것인가.
할머니에게는 아쉽겠지만, 나는 버스를 타지 않을 사람이었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 둔 상태였기에 서둘러 잔돈을 받아 버스에 오를 일도 없었다.
집에 와서 보니 상춧잎들이 아까보다 더 작다.
무쳐먹을 거면 가져가라던 그 옆에 자잘한 상추도 있었는데,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상의 할머니들에게 사면 슈퍼 물건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더 얹어도 주고 깎아도 주고...
까만 봉다리가 참 정겨웠다.
한 사람 때문에..
이제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품도, 그걸 담으려던 봉지도, 거스름돈도, 마음가짐도..
나이가 그토록 드신 분이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역시 다양한 사람이 사는 지구별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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