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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앵이

[반려동물 이야기] 크리미가 떠난 자리

by 비르케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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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가 우리집을 떠나고, 시간은 또 어찌어찌 흘러갔다. 듣자니 크리미는 남친과 서서히 친해지는 중이라 한다. 우리집에서도 그랬지만, 가서도 밥 잘 먹고 야무지게 잘 살고 있다. 크리미 이야기를 처음 읽는 분들께는 아래 링크 글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해드린다.

 

 

[반려동물 이야기] 행복한 크리미이기를..

크리미가 우리집에 온 지 다섯 달이 됐다. 태어난지는 6개월이 넘었다. 조그마한 몸집으로 온갖 애교를 다 부리던 크리미가 최근에 조금 달라졌다. [반려동물 이야기] 행복한 크리미이기를..

birke.tistory.com


크리미가 떠난 자리

 

크리미가 집을 떠난 이후, 마을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나도 빠질 수 없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사진을 찍고 있어서 내 모습은 아쉽게도 사진에 빠져 있다. 

 

 

 

"이걸 어쩐대유."

 

크리미와 덩치가 비슷해서 평소 친했던 오리가 먼저 운을 뗐다.

꼬마닭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다. 

 

 

"나도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다들 놀란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내가 말을 건넨다. 

 

 

"혼자서 이런 일이 가능해유?"

 

오리가 내게 묻는데, 나도 전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모란앵무 알
크리미가 남기고 간 알들

 

이렇게 예쁜 알을 다섯 개나 낳은 크리미.

아무리 예뻐도 이제는 버릴 때가 된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냈었다. 

 

오리는 자신이 대신 품어도 되는지 묻는다. 

 

 

"이건 무정란이에요. 품어도 태어나지 않아요."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찬찬히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아니, 마을 구성원들).

 

 

? ? ? ? ?

 

계란 프라이, 계란찜, 찐 계란... 

이런 걸 평상시 내가 즐겨 먹는다는 걸 저들도 알고 있다. 

 

품어봤자 소용없다 해놓고, 저 알들을 행여 먹어버릴까 걱정인 건가...

 

 

 

이 마을에서 오히려 내가 차별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낯선 감정이 밀려온다. 

그들에게 나는, 덩치는 멀대같이 크고, 밥은 엄청나게 먹는 존재,

크리미 알을 빼앗고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냉혈한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묵묵히 참고 크리미를 생각하며 무정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또, 크리미가 쫓겨난 게 아니라 시집갔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나가본 적 없는 이들이 이해하기에는 한참 무리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크리미의 알들을 걱정해주니 그 마음이 고맙다.

꼬마닭들은 이 사태가 남 일 같지 않은지 연신 표정이 어둡다.

본인들에게도 어쩌면 닥칠 일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아.. 걱정할 걸 걱정해야 하는데 너무들 표정이 어두우니 이 일을 어찌할까.

알을 낳은 크리미는 정작 날마다 남친이랑 잘 놀고 있는데,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아니, 마을 구성원들)이 걱정이다.

 

 

 

내일도 이들에게 무정란에 대해 설명을 할 생각이다. 

무정란이 뭔지 이해시키는 데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이들이 무정란에 대해 이해하고 난 다음에야 알들을 버리든 어쩌든 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같은 마을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무정란 낳았다고 마을 대책회의라니, 크리미가 알면 당장 쫓아올 일이다.

 

 

"뭐래, 듣자 듣자 하니 너무들 하네."

 

 

"앞장서, 누구 입에서 이상한 소리 나왔는지 알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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