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떠나면 알게 되는 것들

꼭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며 산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을 통해, 소중한 사람의 이루지 못했던 꿈을 죽도록 아쉬워하는 한 남자를 본다.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일, 놓쳐버린 기회들을 뒤늦게 붙잡으려 혼자라도 대신해 나서는 그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떠나면 알게 되는 것들

감독: 도리스 되리(Doris Dörrie)

원제: Kirschblüten-Hanami / Cherry Blossoms-Hanami (2008)

출연: 엘마 베퍼(Elmar Wepper-루디), 한넬로레 엘스너(Hannelore Elsner-트루디), 이리즈키 아야(入月 絢-유)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타임: 121분

 

 

시골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루디, 그는 날마다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며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휴식을 갖는 삶을 가장 보람있게 여기며 살아온 가장이다. 불치병에 걸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의 아내 트루디는 의사의 조언대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남편과의 여행을 계획한다.

 

트루디가 남편과 함께 가고 싶던 곳은, 일본의 후지산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칼이 일본에 있기도 하고, 그녀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일본무용 부토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남편은 일본에 관심이 없고 그녀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다. 죽음을 앞둔 남편의 시큰둥한 반응에 금세 단념하고 마는 트루디.

 

결국 첫째와 둘째가 살고 있는 베를린을 향한다. 두 사람의 마음과는 반대로, 갑작스레 나타난 부모가 난감한 자식들.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다들 바쁘다. (일본 영화 '동경가족(東京家族)'이 떠올랐다) 

 

그들이라고 모를까, 형식적으로 부모를 반기고는 있지만 어딘지 자식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두 사람, 어린 손녀의 방을 뺏어 지내는 것도 마음이 무겁다. 이럴 때 서로가 있다는 게 그나마 든든하고 큰 힘이 될 뿐. 손을 맞잡아 보는 트루디와 루디.

 

 

부부는 그만 발길을 돌려 발트해로 향한다. 아이들이 어릴적 찾았던 장소지만, 이제와서는 그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트루디는 아픈 남편을 위해 자신의 가디건에서 팔 한쪽을 꺼내 루디와 나눠 입는다.

 

착한 아내, 자신의 꿈 대신 가정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트루디는 이곳에서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다. 중병에 걸린 남편 대신 허망하게 가버린 트루디, 그녀의 부재는 루디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더 이상 곁에 존재하지 않는 트루디.

 

뒤늦게야 그녀가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 루디는 자신이 놓쳐버린 것을 늦게라도 붙들기 위해 일본을 향한다. 아내의 푸른색 가디건을 지닌 채.

 

 

아들 칼이 회사 사람들과의 벚꽃놀이에 루디를 동반한다. 환하게 핀 아름다운 벚꽃을  죽은 아내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다음날 아내의 가디건을 입고 혼자서 길을 헤매는 루디. 이 영화에 붙여진 제목은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이지만, 원제는 독일어로 Kirschblüten-Hanami, 영어로는 Cherry Blossoms-Hanami, "벚꽃놀이(하나미:花見)"다. 

 

 

트루디가 좋아했던 부토춤도 배운다. 길거리에서 춤을 추던 유를 통해. 그리고 유와 함께  후지산을 향한다. 젊은 아가씨와의 이 여행에 대해 나중에 자식들이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끝까지 부모의 뜻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다.

 

자신의 죽음도 알지 못했지만, 친구이자 동지인 아내의 죽음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루디. 그가 아내를 위해 부토춤을 배우고 후지산을 찾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조금만 더 일찍 소중한 사람의 꿈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과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두 사람의 남은 인생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왜 이제야 일본에 왔느냐고 묻는 막내아들 칼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았을 일이다. 

 

작년 2023년 10월, 이 영화의 주인공 루디를 연기한 엘마 베퍼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그는 독일의 배우이자 성우로 활동했으며, 수십 편이 영화 및 TV작품에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죽음을 앞둔 인물로 등장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 쏙 빼게 만든 다음 새드엔딩으로 가슴 먹먹함을 주고 가더니만, 실제 사망 소식을 나중에야 듣게 되니 이 영화 생각이 다시 나서 포스팅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