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출판된 독일 낭만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집 '생의 절반 프리드리히 횔덜린'.
생의 절반을 자신의 다락방에서 광기와 싸우다 갔지만, 사후 재조명되며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은 횔덜린.
생의 절반 프리드리히 횔덜린
프리드리히 횔덜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횔덜린 말고도 횔더린, 횔더를린, 심지어 휠더린으로도 표기되는 이 독일 낭만주의 시인의 작품을 그동안 아주 묵을 대로 묵은 책으로만 보았다. 다른 독일 시인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시인이기도 한데, 이렇게 새책으로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책의 제목이 '생의 절반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다. 생의 절반(Hälfte des Lebens)은 횔덜린의 시 제목에서 가져왔다. 자신의 생의 절반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횔덜린 자신이 본인의 생애 절반을 지칭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도 1805년에 이 시를 발표하고 1843년 숨졌으니, 우연히도 인생 절반인 시점을 이 시로 얼추 맞췄다.
횔덜린은 1770년 네카강변의 라우펜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튀빙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목사의 길은 그의 뜻이 아니라 모친의 뜻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사제의 길 대신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생계를 위해 가정교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제자의 어머니였던 여인과 염문에 휩싸이게 되면서 도망치듯 독일을 떠나 프랑스와 스위스 등지를 떠돌게 되었는데, 1802년 마침내 독일에 돌아왔을 때는 정신착란이 심해진 상태였다. 갈 곳 없는 그에게 어느 목수가 자신의 집 2층 다락방을 내줬다. 그 공간에서 그는 36년간을 미친 시인으로 살았다. 그의 작품들 또한 무시당한 채로 버려지고 사라졌다.
20세기 들어 횔덜린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는데, 이 책에 따르면, 나치 정권이 그들의 선전(선동)에 횔덜린의 선집 '야전판본(Feldausgabe)'을 수십만 권 인쇄해 전선에 뿌리게 된 게 기점이라고 한다. 어떤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문학이나 다른 예술이 이용되는 일은 역사에 비일비재하지만, 횔덜린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쳤을 줄이야.
Hälfte des Lebens
Mit gelben Birnen hänget
und volle mit wilden Rosen
das Land in den See,
ihr holden Schwäne,
und trunken von Küssen
tunkt ihr das Haupt
ins heilignüchterne Wasser.
Weh mir, wo nehm ich, wenn
es Winter ist, die Blumen und wo
den Sonnenschein
und Schatten der Erde?
Die Mauern stehn
sprachlos und kalt, im Winde
klirren die Fahnen
누렇게 익은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들장미 가득한 벌판. 대지는 호수로 이어지고, 호수에는 백조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눈다. 여기까지 인생의 절반은 행복하게 보인다.
그러나 한 줄 띄고, 다음 연에서 바로 나오는 말이 "아프다(Weh mir)"이다. "아아 이제 겨울이 오면 그 꽃들과 햇빛과 대지의 그림자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벽들은 말없이 차갑게 서있고, 바람속에 깃발들이 삐걱이며 흔들리네."
두 연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고 사랑 가득한 때가 절반, 앞으로 살아갈 겨울 같은 차가운 시간들이 절반이다. (어쩐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음은..)
나의 오래된 책 중에도 횔덜린의 이 시가 있다. 이 책을 가지고 있게 된 게 얼마나 됐을까 헤어보니 40년이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보니 같은 시인데, 우리말로는 어쩜 이리 다른지... 서로 비교하며 보게도 된다.
36년간 다락방에서 그는 밖을 바라보며 그 풍경을 시로 담았다. 목차에 보면, 봄(Frühling/Der Frühling), 여름(Sommer/ Der Sommer ), 가을(Herbst/ Der Herbst ), 겨울(Winter/Der Winter )이라는 제목의 시들이 여러 개 있다. '내다봄'이라 번역된 'Die Aussicht(조망, 전망)'라는 제목도 보인다. 어찌 보면 세상과 단절된 시인이 외부와 소통하던 유일한 매개체가 그의 방 창문이었을 테니 자주 등장할 법한 제목들이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서야 독일 현대작가들에 의해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된 횔덜린. 그의 시를 번역한 박술 작가는 횔덜린이 현대시의 선지자로 읽히길 바란다고 밝히며 책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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