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는 책들이 최근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 책들 중에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카프카의 시와 드로잉을 담은 책이 있어서 골라보았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카프카 시 & 드로잉,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Es gibt nur ein Ziel,
keinen Weg.
Was wir Weg nennen,
ist Zögern.
//
목표만이 있을 뿐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은
망설임이다.
//
이 책의 제목,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은 카프카의 시구를 인용했다. 목표가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 가든 정해진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길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 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주저함, 망설임일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데, 서울 가는 길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가지 못 하는 사람의 주저, 망설임일 뿐이라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이 책에 실린 시들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외국서적을 볼 때는 원어가 가진 본래의 느낌을 이해하려 최대한 애쓰며 보게 된다. 이 책은 감사하게도 원문을 실어주어서 나름의 언어로 카프카를 해석해 볼 수 있었다.
제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카프카의 시, 그가 이 시들을 시집으로 제대로 엮어 발행한 게 아니라, 산문인지 시인지 장르도 불분명한 채로 그냥 지니고 있던 것을, 그의 사후에 다른 이들이 모은 것이다. 낙서같은 드로잉까지 하나하나 그의 유작으로 보관하며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으니, 저승에서 카프카가 무진장 화낼 일 같기도 하다. "버리라고 했잖아!" 하면서.
Es gibt ein Kommen
und ein Gehn
Ein Scheiden
und oft kein ㅡ Wiedersehn.
//
오고 감이 있다
헤어졌지만
만나지 못함이 자주 있다
//
동양에서 말하는 '회자정리거자필반'.
(會者定離去者必返 :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오며 가며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떠난 사람(去者)과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Darauf kommt es an,
wenn einem ein Schwert
in die Seele schneidet :
ruhig blicken,
kein Blut velieren,
die Kälte des Schwertes mit
der Kälte des Steines aufnehmen.
Durch den Stich,
nach dem Stich
unverwundbar werden.
//
누군가의 마음에 칼을 내리칠 때
중요한 점은,
조용히 겨눈 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칼의 차가움이 돌의 차가움처럼.
찔렀으나
찔린 후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
갓 잡은 물고기를 회로 뜰 때,
피가 묻어나지 않게 떠야 잘 뜨는 거라 했다.
사람의 영혼에 비수를 날릴 때도 마찬가지임을 이 시를 보며 느낀다.
Irgendein Ding
aus einem Schiffbruch,
frisch und schön
ins Wasser gekommen,
überschwemmt und
wehrlos gemacht,
jahrelang,
schließlich zerfallen.
//
난파선에 있던 그것.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다에 떨어졌건만
오랜 세월 물속에 잠겨 퇴색되어
마침내 망가져버린.
//
그 어떤 것이라도
세월의 바다에,
관습이라는 바다에
오래 빠지면 모든 게 퇴색되고야만다.
Ich kann schwimmen
wie die andern,
nur habe ich ein bessere Gedächtnis
als die andern,
ich habe
das einstige
Nicht-schwimmen-können
nicht vergessen
Da ich es aber nicht vergessen habe,
hilft mir
das schwimmen können nichts
und ich kann
doch nicht schwimmen.
//
나는 수영을 할 줄 안다
다른 이들처럼.
다만 다른 이들보다 더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이전에 수영을 못했음을 잊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잊지 않았기에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음에도
수영을 하지 않는다
//
할줄 몰라도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
할줄 알아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
할줄 몰라서 달려들었다가 고비를 넘겨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는 사람도 있고,
고비를 여러 번 넘겨도 그때마다 매번 또 달려드는 사람도 있다.
할줄 몰랐다가 지금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걸 다 겪은 사람일 수 있다.
그때마다의 기억은 그의 발을 묶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할줄 모르는 게 아니라는 점 아닐까.
만일 수영은 비유일 뿐, 어떤 나쁜 짓이라면?
계속 나쁜 짓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그런 짓을 안 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시적 자유로 맘껏 상상하게 하는 시다.
카프카는 1883년 체코에서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계 학교에서 주로 수학했다. 그의 작품이 독일어로 쓰이게 된 이유다. 그 후 프라하 대학교에서 법률학을 전공해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직장생활과 함께 평생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아들 셋, 딸 셋을 둔 카프카의 아버지는, 이후에 아들 둘을 잃고 유일한 아들인 카프카에게 몰두했다. 유달리 섬세하고 진지한 카프카와는 서로가 너무 맞지 않는 사이였기 때문에 카프카에게는 늘 권위적이고도 냉소적인 아버지였다.
마치 그의 소설 '변신'에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에게 사과를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처럼, 실제 카프카의 아버지도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죽을 때까지도 화해할 수 없는..
유대계 체코인이었으나 독일어로 작품을 남긴 독일어권 작가로서, 또 아버지의 기대와 질책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한 집안의 아들로서 갈등했으며, 사랑했던 여인들과 결실을 이루지 못한 실망감으로, 병으로 일찍 자리에 누워야 했던 절망으로 그는 혼란을 겪었다.
죽음을 앞둔 카프카는 자신의 나머지 작품들을 모두 없애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1924년 6월,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러나 젊은시절부터 평생을 함께 해 온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 세상에 알렸다.
카프카가 남긴 드로잉에는,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유달리 길게 묘사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림자처럼 검은색으로 그려진 나머지, 사람이기보다는 유령 같은 느낌이 든다. 또 현실이 아닌 꿈에 대한 스케치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분히 몽환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고뇌에 찬 듯하고, 또 어찌 보면 장난스럽게도 보인다.
그에게는 끄적임이었을지 모를 모든 글들과 그림까지 그러모아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또 카프카의 다른 면을 들여다본다. 그가 죽고 10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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