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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하우스, 짜고 치는 리얼리티쇼의 결말

by 비르케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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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쇼와 30년대의 한 시점을 바탕으로 한 어느 방송국의 특별기획 리얼리티쇼.
설정에 또 설정, 60년 전으로의 타임슬립을 택한 두 가족의 정해진 결말.

1961 도쿄하우스, 짜고 치는 리얼리티쇼의 결말

1961 도쿄하우스

1961 도쿄하우스는 작년 10월 번역 출간된 마리 유키코의 장편소설이다. 그녀는 이야미스로 잘 알려진 작가다. 이야미스는 일본어 '이야다(いやだ : 싫다)''미스터리'가 결합돼 만들어진 단어로, 인간의 저변에 자리 잡은 불쾌하고 어두운 감정을 건드려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장르를 뜻한다. 이를테면 칼을 든 괴한이 아닌, 입구가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손을 넣을 때의 뭉클함 같은 불안 또는 공포다.

 

 1961 도쿄하우스  줄거리

개국 60주년을 맞은 G방송국이 개국 기념으로 뭔가 특별한 방송을 기획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은 두 가족을 섭외해, 쇼와 36년인 1961년의 삶을 재현하고자 한다. 

 

쇼와 30년대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일본의 고도성장기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응답하라 1988'에 연예인 대신 일반인 가족을 등장시킨다는 설정인데, 아무리 지금 시대에 잘 먹히는 이른바 관찰예능일지라도 자칫하다가는 유튜브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방송관계자들이다.

 

편성국장인 오바야시를 필두로, 사카가미 PD와 방송국 제작진들이 있고, 실제 방송을 만들어갈 방송하청업체 소카이샤 직원들이 함께 한 자리다. 방송의 시대배경이 쇼와 36년으로 결정된 데에는 소카이샤의 사장인 오카지마의 적극적인 제안과 설득이 있었다. 

 

G방송국은 이 특별기획을 위해 출연자 가족들에게 5백만 엔의 출연료를 내걸었다. 촬영 중 필요한 돈도 몽땅 지원한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고, 그 결과 고이케 가족과 나카하라 가족이 선발된다.

 

고이케네는 부부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매까지 4인 가족이다. 그들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단한 열의를 보인다. 나카하라네는 아직 자녀들이 어리다. 그들도 4인 가정이며 돈이 궁해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하지만 500만 엔이나 되는  출연료를 주면서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스태프들은 출연자들 각자에게 특정한 역할을 제시한다. 그리고 때때로 새로운 제안에 동의를 구한다. 모두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강요는 하지 않는다", "돌아가도 좋다" 등 선의 가득한 말을 내뱉고는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자면 빈손 쥐고 이 촬영장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노예계약이 아닐 수 없다. 

 

 

고이케 가족과 나카하라 가족은 3개월간의 촬영을 위해 Q시의 S가오카 단지로 향한다. 쇼와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당시에 지어진 아파트를 찾아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재건축이 한창 진행 중인 낡은 아파트에서, 그들은 실제 이름 대신 각각 야마다 가족과 스즈키 가족으로 불리게 된다. 

 

13평짜리 집은 자신들이 실제 사는 집보다도 작다. 게다가 시대를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촬영 공간에는 불편함이 말도 못 할 정도로 많다. 더군다나 연휴를 앞두고 단지에 들어온 고이케 가족, 아니 (배정받은 이름대로) 야마다 가족은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윗집에 가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두 가족이 각각 윗집, 아랫집으로 배정받았던 것이다. 

 

 

야마다 부인이 뭔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스스럼없이 자기네 것을 내주는 스즈키 부인이다. 매번 작은 것까지 도움을 청하는 야마다 부인.. 그러면서도 스즈키 부인에게서 빌린 물건을 돌려주는 일은 없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필요한 것들은 지원이 되기에 그 집에서 갖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같은 조건의 제안을 받고 같은 아파트에 들어온 두 가족인데, 야마다 부인의 눈에는 스즈키네가 자신들과 많이 다르게 보인다. 머리를 뽀글뽀글 볶아버린 자신과 달리, 세련된 외양의 스즈키 부인. 

 

 

게다가 스즈키네는 인테리어며 살림살이까지도 고급지다. 그뿐인가, 심지어 스즈키씨(실제 이름: 나카하라 마키히로)는 엄청나게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설정되어 있다.

 

의상을 담당했던 스태프의 나중 진술에 따르면, 쇼와 30년대는 한 달 만에도 패션이나 유행이 휙휙 지나갔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그 시대에 있을 리가 없는 '오파츠'가 될 수 있어서 PD가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특히나 스즈키 부부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었을 텐데 그때마다 야마다 부인은 또 얼마나 서운했을까.

 

같은 단지라도 집집마다 격차가 있는 게 당연지사지만, 똑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어느 가족은 아쉬울 것 없이 다 갖춰진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또 다른 가족은 거의 맨땅에 헤딩 수준이다. 

 

 

그뿐 아니다. 평범한 남자의 세 배나 되는 연봉을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 스즈키씨에 비해, 야마다 씨는 오히려 예전만 못한 인간으로 전락해 있다. 가사분담에 적극적이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물 한 잔도 혼자 떠먹지 못하는 마초로 변신한 남편이 곱게 보일 리 없는 야마다 부인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차츰 모두를 향한 미움의 감정이 자라난다.

 

스즈키 부인 또한 마음 한구석에 야마다 부인에 대한 증오가 자라고 있다. 거지처럼 얻으러 오고 도둑처럼 들고나가는 야마다 부인이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은 그녀다. 그러면서도 막상 야마다 부인이 뭔가를 얻으려 오면 친절하게 무엇이든 다 내어준다. 이 프로그램에서의 설정 때문이다. 

 

야마다 부인과 스즈키 부인은 스태프들이 의도한 바에 따라 부지불식 중에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짐바르도라는 심리학자의 학설. 어떠한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캐릭터를 얼마나 간단히 바꿀 수 있는가에 관한 실험)을 당하고 있었다.  그 결과 두 부인은 서로가 미운 관계로 점차 변모해 간다. 각각이 맡은 캐릭터에 너무도 열심히 몰입해 준 결과다.

 

 

서로를 미워하게 된 야마다 부인과 스즈키 부인에게 방송 스태프가 새로운 제안을 한다. 개인 인터뷰에서 두 사람에게 하는 스태프의 멘트가 각각 똑같다. 그녀들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네는 스태프는 다른 아닌 사카가미 PD. 한겨울에도 민소매 차림인 그녀는 방송국의 명운이 담긴 이번 리얼리티 쇼에 사활을 걸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차츰 뜨거워지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활력을 넣어줄 또 하나의 갈등요소를 심어주기 위해 그녀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추가했다. 

 

출연자들이 여전히 직장이며 학교에 나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특히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야마다네 아이들이 위험하다. 이러쿵저러쿵 사람들의 뒷담화에다, 이제는 어른들의 불륜까지 두 아이의 짐이 되고 만다. 

 

 

방송이 전파를 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오래전 잊힌 사건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쇼와 36년 당시 발생해 미제로 남아 있는 'Q시 여아 살해사건'이다. 

 

방송 영업맨이자 이 프로젝트의 구성작가로 일하고 있는 요시모토에 의해 다카야는 이 프로젝트를 누군가 일부러 구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소카이샤의 사장 오카지마다.

 

다카야는 소카이샤의 직원으로, 소설 전반이 그의 시선을 따라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도 실은 다카야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카지마 사장은 다카야의 아이디어를 수정해 100년 전이 아닌 쇼와 36년으로 시대 배경을 수정했고, 구성작가 자리도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주었었다.

 

이로써 쇼와시대의 미제사건은 다시 현실 속에서 반복된다. 오카지마에 의해 자신들의 이름 대신 야마다와 스즈키라 불리게 된 두 가족은, 실제로 쇼와 36년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의도치 않게 재연하게 된다. 오카지마가 이런 짓을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끊겨버린 기억의 한 자락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요시모토. 시청자들의 악플에 대응하며 그들을 들었다놨다, 결국은 기억 속에 사라졌던 쇼와 36년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또 다른 시나리오를 기획한 인물. 그 또한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사카가미 PD 또한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모두를 가볍게 속이고 프로그램을 살리고자 했던, 그래서 타인의 아픔쯤은 500만 엔으로 치유될 줄 알았던 그녀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어린 시절 기억의 단편들에 입혀지는 그 어떤 냄새. 그것이 당시를 또렷이 재현한다. 이른바 프루스트 효과다. 하지만 조각난 기억을 맞추고자 무리하게 시작한 모험은 결국 희생을 낳고 만다. 

 

긴장이나 스릴은 그다지 없는 밋밋한 소설이었다. 범인을 추리해 보는 재미도 그다지.. 막판에 작가의 시선을 따라 범인 잡기 놀이를 하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방송의 재미를 위해 설정에 설정을 더하는 장면이나 댓글알바, 방송하청업체를 속이는 일을 가볍게 여기는 방송국 직원들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 흥미로웠다. 또, 일본 쇼와시대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그 시절 (아파트) 단지 입주와 관련된 부분도 살짝 볼 수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내집마련에 안달하는 사람들의 모습, 당첨에서 떨어진 이들의 울분과 질투까지 공감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돈을 쫓고 명예를 쫓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잘 담아낸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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