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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 링크 소설, 속임수 (Die Betrogene)

by 비르케 202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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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 링크 소설, 속임수 (Die Betrogene)

샤를로테 링크_속임수

오래전 읽었던 샤를로테 링크의 소설, '속임수'를 다시 읽는다. 이 소설이 시리즈로 계속 나오고 있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제 Die Betrogene, 배신당한 자, 사기당한 자, 속임을 당한 자... 이 소설에서 당한 자는 누구이며, 왜 속여야만 했던 것일까. 

 

 

리처드 린빌은 잠결에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했음을 알아차린다. 스카보로 경찰서 강력계 수사반장으로 퇴역한 그는, 이제 지원요청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으나 일반인의 신분으로 신고를 할 수 있음에도, 괜한 일로 후배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홀로 권총을 들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주방을 향한다.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첫 번째 실수였다.

 

아내가 죽기 전에 주방문을 고쳐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을 했기 때문에, 범인이 고장 난 주방문으로 들어와 주방 안에 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총을 든 채 주방문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자신을 범인이 노려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 한 채로.

 

 

리처드 린빌은 죽음을 예감하며 멀리 있는 딸을 떠올렸다. 결혼도 못하고 친구도 없이 쓸쓸하게 살아가는 딸, 늘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딸이다. 아버지인 자신 또한 상황은 비슷했기에 서로에게 힘든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괜찮은 척 좋은 모습을 보이려 서로가 애써왔다. 외롭지 않은지 힘들지 않은지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마지막 순간 맘에 맺히는 그다. 

 

 

리처드 린빌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고 그의 딸 케이트 린빌이 스카보로 인근 스캘비에 위치한 고향집을 찾는다. 그녀는 런던경찰국에서, 아버지처럼 강력계 형사로 재직 중이다. 멀리 있지만 자주 전화통화를 나눴고, 휴가나 부활절, 크리스마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니 집에는 적막감만이 남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에는 이 집에도 웃음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우울함만이 자리 잡은 집.

 

아버지의 집과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에 왔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고자 혼자만의 수사에 돌입한다. 자신의 관할도 아니면서 수사에 개입하고 있는 케이트가 스카보로 경찰서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케일럽 헤일 반장은 그런 케이트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선배의 딸이기에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만 그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케이트에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의 삶을 찾으라고 조언해 주는 케일럽. 그렇게 케이트 & 케일럽이 이끌어가는 샤를로테 링크의 미스터리 시리즈가 시작된다. 

 

 

케이트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수사를 펼치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암으로 고통받던 때 아버지는 다른 연인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 연인이 저지른 과오를 자기 선에서 조용히 덮어버렸다. 작품의 제목과 연관해 보면, 가장 크게 배신을 당한 자, 속은 자는 아마도 케이트일 것이다. 

 

 

또 다른 희생자. 리처드 린빌의 연인이었던 멜리사다. (내가 본 책은 2017년 초판이라서 오자가 눈에 띈다. 다른 건 몰라도 등장인물의 이름을 틀리다니. 뜬금없이 멜라니가 등장... 최근 책에는 교정이 됐을 테지만 순간 멜라니가 누군가 했다.)

 

리처드 린빌의 집에 낯선 자가 침입했을 때와는 달리, 멜리사에게는 불안에 떨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들 덕분에 위기를 넘기기도 했지만, 결국 범인은 그녀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보건대, 리처드 린빌 또한 신고 아니라 아무리 별짓을 다 했어도 끝내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은 리차드 린빌의 죽음을 시작으로 전개되지만, 진짜 시작은 그 이전에 마치 프롤로그처럼 살짝 끼워진 어느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다.

 

소설의 시점으로부터 13년 전,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아이는 지방도로에 이른 순간 생일선물로 받은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도로를 질주한다. 그 순간 아이는 자신이 페라리에 타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 나서 불과 몇 분 후 아이는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만다. 그렇게 살짝 스쳐간 아이의 이야기는 사건의 전말이 펼쳐지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오게 된다. 

 

 

애초에 아버지의 집을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케이트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누구든 지친 심신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공간에서 그녀는 삶의 위안을 얻는다. 이로써 런던에 있어야 할 케이트가 다시 한번 고향에 내려올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는것인가 했는데, 책 마지막 부분에서 케이트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집을 팔거라고 다시 생각을 바꾼다. 케이트의 심적인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는 대상물이 집이기도 한 것이다.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장편소설이므로 인물과 사건들이 단조로울 리도 없다. 주요 사건을 이끌어감과 동시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교차전개된다. 아이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결국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하게 된 부부, 스텔라 크레인과 조나스 크레인의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는 조나스 크레인은 일적으로 번아웃 된 상태로, 의사의 조언대로 곧 여행을 떠나려던 참. 어쩌면 샤를로테 링크 본인이 같은 작가로서 가장 서술하기 쉬운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킨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범인을 찾게 되어 짜 맞춰지는 사건의 경과가 너무 반복적으로 서술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는지가 여러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반복되다 보니 뒷부분에 몰입도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달까. 

 

 

 

책의 뒤표지를 보면, 이미 작품 전반에 관한 스토리가 드러나 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인가도 싶다.

 

책 마지막에 작가는 스텔라의 시선을 통해 속임수에 관한 또 다른 힌트를 준다. 위험으로부터 돌아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면 그리웠던 일상에의 행복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속임수일 뿐. 한계상황에 직면했던 자들은 절대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상처는 영원히 남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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