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남다른 가치 때문이다. 명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이란 클래식과도 통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든든한 그 어떤 것에서 명품의 가치는 더 빛난다.
샤넬 넘버5 100년, 내게 맞는 향수는..
백화점 앞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대형 광고판이 시즌마다 바뀌어가며 걸린다. 백화점을 지날 때마다 지금 시즌의 테마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현 시즌의 테마는 크리스마스다. 이 전염병 시국의 암울함에서 사람들에게 한 자락 희망이라도 될 수 있을까, 이 계절만의 시즌 특수란 게 지금도 존재하긴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으로 광고판을 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애니메이션 광고와 함께, 또 다른 쪽에는 샤넬 넘버5(Chanel No.5) 광고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샤넬 넘버5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마를린 먼로가 사랑했던 향수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래, 세기가 바뀌도록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샤넬 넘버5는 100주년을 기념해, 기존의 샤넬 넘버5 오 드 빠르펭(=오 드 퍼퓸)과 함께, 리미티트 에디션 샤넬 넘버5 로(L'eau)를 선보이고 있다. 요새 향수들이 100ml 단위로 판매되는 것도 신기한데, 샤넬 넘버 5 또한 100ml 가격이 꽤 세다. 포도를 먹을 수 없었던 여우의 신포도 타령처럼, 샤넬 넘버 5의 진한 향기는 여전히 나랑은 어울리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게 되는 것도 같다.
사실 샤넬 넘버5는 웬만한 사람과 잘 어울리는 향기가 아니라 생각한다. 나이가 어릴 때는 너무 무거워서 어울리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는 너무 무거워서 부담이 된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향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샤넬 넘버5가 어울리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하다.
바로 옆에 샤넬과 함께 디올(Dior) 광고도 결려 있다. 내게는 착 감기는 옷처럼 반갑다. 디올의 오 드 뜨왈렛 향수들은, 향수에 열광하던 20대에 무겁지 않은 향기로 늘 가까이에 있었다. 플로럴 향기가 조금 가볍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디올의 향기로 예전 나이 느낌을 떠올리기도 한다.
디올 향수도 샤넬 넘버 5처럼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디자인으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명품이란 그런 자신감인가 보다. 세월은 지나고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딸이나 손녀에게 물려줘도 시대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는, 먼저 구매한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는 품격 있는 제품으로 세월까지 극복해나간다.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는 세상이라 화장도 향수도 꾸밀 필요가 거의 없이 살다가, 새삼 오랜만에 향수를 떠올렸다. 예전에 쓰던 제품 중에는 더 이상 시판되지 않는 제품도 있다. 정말 생각나는 제품인데 더 이상 그와 비슷한 물건을 찾을 수가 없을 때 느끼는 이상한 허전함이 있다. 명품이란 달리 명품이 아니라, 그만큼 꼭 곁에 두고 싶은 그런 물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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