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에는 공부 같은 스트레스 없이 맘껏 뛰어놀게 할 거라고 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앞으로 겪게 될 입시지옥도 끔찍한데, 미리부터 어린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못할 짓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것만큼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언제부터 아이에게 공부를 하게 할 것인지 말이다.
어쩌다 보니 초중등 아이들에게 꽤 오래 수학을 가르쳤고, 또 한동안은 논술을 가르쳤었다. 논술은 일단 차치하고, 수학을 가르치며 안타까웠던 점은 수학이란 대상을 공부로 처음 접하게 되는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수학이 어렵고 싫었던 아이들이다.
수학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수학을 좋아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수학을 좋아할 수도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본 아이들 중에 수학이 좋다는 아이들은 꽤 많았다. 그 좋아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만 다를 뿐이다. 수학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아이들은 끝까지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만큼 명확한 학문이 없고, 공들인 그대로 보답하는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유아기의 숫자놀이
수학을 놀이처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때는 일생에 딱 한 번 유아기 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문이 터지면서 숫자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숫자는 그만큼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하고 숫자에 고사리 손을 갖다 댈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숫자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수의 개념만 심어주어도 훌륭한 공부가 된다.
말문이 막 트인 아이들의 눈에 숫자는 그냥 이미지일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이미지에다 수의 개념을 넣어주는 것이 양육자의 역할이다. 이때 손가락을 이용하면 1은 하나, 2는 둘...처럼 수와 양을 연결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나중에 더하기 빼기를 할 때는 오히려 손가락셈을 지양하는 게 좋다. 손가락셈에 익숙해지면 양육자나 아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숫자에 속게 된다. 더하기 빼기는 문제없다고 여기다가 숫자가 커지는 순간 일찌감치 나가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0까지의 숫자에 친숙해졌다면 그다음은 수창(수를 입으로 세는 일)으로 넘어간다. 수창은 단순히 1, 2, 3, 4,... 식 수의 나열이 아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가 어디까지 나열되는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이다. 수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데 수창만큼 좋은 것은 없다. 처음에는 10까지, 그다음은 20까지, 30까지... 이런 식으로 수의 범위를 늘려준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양육자가 앞서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기다리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다. "그다음은 뭐야?"
수에서 '그 다음'의 끝은 무한대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아이는 그 무한대를 향해 나아가는 탐험가여야 한다. 이제 갓 탐험을 시작했는데 그 길은 무한대임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그다음'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게 양육자의 역할이다. 1, 2, 3, 4,... 이런 수창에 흥미를 잃을 때쯤 1, 3, 5, 7, 9, 11... 또는 1, 4, 7, 10, 13... 처럼 숫자 하나 또는 두 개를 건너뛰면서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때 아이와 함께 숫자를 주고받으면 효과는 배가 된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이 과정을 참 즐긴다. 100까지 수창을 하다 보면 아이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알려준다. "그다음 숫자도 있단다."
1000까지, 10000까지도 있음을 알려준다. 지폐를 보여주면서 10000이 두 개면 20000이 되는 원리를 알려주는 방법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리고 지폐를 섞어서 두 지폐를 더할 수 있게도 해 준다.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가 만 단위 수를 더하고 뺀다고 하면 놀랄 수 있지만 수창을 오래 한 아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음식점에 가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음식 가격을 합산해보는 아이들, 주변에 꼭 있다. 돈 밝히는 애로 잘못 비칠 수 있지만, 그 아이들이 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숫자다.
유아기 학습이 중요한 이유
수학을 어려워하던 학생들의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들을 4세~5세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수를 놀이로 먼저 대하고 수와 친해질 기회를 되도록 빨리 잡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빨리 시작하고, 꾸준히 접하고, 더 앞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기가 이때다. 이때를 잘 활용해야 아이의 뇌도 그쪽으로 일찍 열린다.
즐거운 놀이처럼 접하는 수학은 단언컨대 아이의 미래에 큰 도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수를 좋아하는 아이는 피자나 햄버거 좋아하듯 좋아한다. 그리고 상당 기간 그들은 수를 가지고 하는 이 모든 활동들이 놀이인 줄 안다.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고생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어른들의 걱정처럼 아이들은 일찌감치 고생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게 공부할 시기를 놓쳐서 내내 학습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 더 큰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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