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정보..

호재? 허재? 그게 뭔데?

by 비르케 2021. 5. 21.
300x250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폰 번호가 떠 있다. 마침 기다리던 전화가 있어서 얼른 받았더니 땅 투자하라는 영업전화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끊었을 텐데, 예전에 지인이 관심 있어 하던 동네 이야기라, 들어나보자는 맘으로 대화를 나눴다. 

 

KTX(고속철도)가 서고, GTX(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도 서고, 무슨무슨 철도도 예정되어 있다 한다. 조만간 세 개의 굵직한 철길이 연결되는 지역이니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주변에 또 무슨무슨 지구가 생겨나고 지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을 마구 늘어놓는다. KTX나 GTX는 그렇다 치고 그 무슨무슨 철도는 구체적으로 어디와 어디를 연결하는 것인지 물었더니, "잠깐만요"하고 옆사람에게 되묻는 소리가 들린다. GTX는 어느 역을 말하는 것인지도 물었는데 지금 자기가 추천하는 현장 주변에 선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다른 예정지가 있는데 그곳에도 또 선다고요?"

딱 봐도 엉터리 정보라서 삐딱하니 되묻게 된다. 그런데 선다는 것이다.

 

"GTX인데 그렇게 서고 언제 서울 가죠?"

내 물음에 옆사람과 또 뭐라뭐라 하더니만 이내 자기가 잘못 알았다 한다. 

 

한참 '신입이'인 것 같아서 장난기가 발동을 했던 것인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사무실 위치를 묻고 있었다. 역시나, 기획부동산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의 ○○역이라 한다. 피식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런 내게 왜 웃느냐면서, 자기네는 기획부동산 아니라고 도둑이 제 발 저린 식의 답변을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더 재미있다.

 

"여기 기획부동산들 다 망했어요. 저희는 아니에요."

 

 

 

 

 

오래전 일이지만, 기획부동산인 줄 모르고 취업을 하겠다며 내 발로 그런 곳에 간 적이 있다. 한창 애들 챙겨야 했던 때라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라는 근무조건에 혹했었다. 알바 사이트를 통해 면접 일정을 정하고 찾아갔는데, 그날 면접은 나 혼자였다. 면접보다는 어쩐지 무슨 교육을 받으러 온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송산그린시티 조성 무렵이라, 사무실에 온통 안산과 화성 사이의 땅들에 관한 자료들이 즐비했다.

 

알바 사이트에서 보기로는 사무실에서 간단한 사무 보고 전화받는 일 정도였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사무실에 온 사람들에게 땅을 소개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개발에 관한 내용을 잘 알아야 하기에 교육도 필수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료로 부동산 공부를 하게 될 좋은 기회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의 특징은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의 사례를 앞세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차 마시러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분은 학원 샘인데 여기 와서 얼마를 벌었고, 또 저분은 얼마를 벌어 집 살 때 받은 대출금을 다 갚았다 한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걸린 사진 속 누군가를 또 가리키며 저분도 얼마를 벌었다 하면서, 너댓시간 잠깐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지내면서 이 정도 버니 얼마나 좋은 직장인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들은 그런 욕망을 건드리고,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말을 건넨다. 대략적이나마 상대방의 삶의 모습을 체크하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인 듯 착각할만한 방법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기획부동산이 뭘 하는 곳인지 모른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한 사람들은 교육받으면서 알게 된 땅을 자신들이 직접 사는 경우가 많다. 알고 사고 모르고 산다. 기획부동산의 주 타깃은 오늘의 나처럼 전화를 받는 사람보다 어쩌면 예전의 나처럼 자기 발로 직접 사무실을 찾은 사람들 속에 있을지 모른다.

 

작정을 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많이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용납하기는 어렵지만 본인이 당했기에 애물단지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내기 위해 당당하게 영업한다. 애초부터 남을 속이려고 작심한 자들보다 더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획부동산을 통해 잘못 산 땅일지라도 요새처럼 자산가치가 솟아오를 때는 덩달아 그 가치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운 좋게 오른다 한들 투자한 돈도 회수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보다 더 문제는 이런 땅들이 구조적으로 팔기 어려운 땅이라는 점이다. 팔기 어렵다는 점, 그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호재 좋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체득하지 못한 호재는 호재가 아니다. 남들이 말하는 호재 중에는 호재가 아닌 경우도 많다. 정말 호재라면 몇 억이 들더라도 본인이나 자기 가족이 가져가지 생판 모르는 남에게 까지 전화를 돌리지 않는다. 아직 미정인 기사들을 마치 곧 실현될 이야기인 것처럼 조장해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다.

 

 

 더 읽을만한 글 

 

은전 한 닢, 메이플 한 닢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은 그가 상해에 있을 때 본 일을 소재로 쓴 것이다. 늙은 거지 한 사람이 전장(돈을 바꾸어주는 집)에 들어와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꺼내놓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

birke.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