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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중동 화약고 분쟁, 끝없는 비극

by 비르케 2021.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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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중동 분쟁에 따른 친 팔레스타인 시위가 지난 주말 파리, 런던, 마드리드, 아테네, 베를린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행동에 항의해 공격 중단을 촉구하고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하기 위한 이번 집회는, 처음 의도와 달리 격화되어 결국 물대포와 최루탄까지 동원되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일부터 가자지구 내 800개의 표적을 공격했고, 이에 팔레스타인 하마스도 이스라엘을 향해 3천 개 가까운 로켓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운집한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팔레스타인 해방"과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의 영원한 수도"등을 구호로 외쳤다. 

 

친 팔레스타인 시위

 

 이스라엘 건국 과정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가나안 지역)에 들어와 기반을 다지고 살게 된 것은 기원전 15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유대인들은 결국 로마 군대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쫓겨나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살게 되었다. 이후 로마가 아랍인들에 의해 몰락당하게 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방황하는 민족으로 살던 유대인들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잃어버린 자신들의 땅을 되찾자는 '시오니즘' *을 펼치게 된다. 영국은 유대인들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시오니즘을 부추겨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의 국가를 인정하였고, 뒤이어 2차 세계대전으로 유대인들이 핍박을 받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찾아 귀환하는 일에 필사적이 되었다. 이에 유엔에서는 1947년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오래도록 숙원하던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오게 되었고, 마침내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강대국 간 이권 개입으로 부추겨진 중동의 화약고 분쟁은 필연이 되었다. 

*시오니즘: 팔레스타인 시온산으로 돌아가 국가를 건설하자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무려 세 개나 되는 종교의 메카다.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신적인 고향이고,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죽음을 당하고 부활한 곳, 아랍인들에게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승천한 곳'이다. 당연히 종교 간 마찰이 없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한 땅에 나눠 살고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 두 민족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끊임없는 테러와 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최고 성지가 이민족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대한 분노로 두 나라 간 감정은 극에 달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이 단행된 가자지구와 그 옆의 서안지구가 팔레스타인 땅이다. 지도만 봐도 이스라엘 안에 팔레스타인 아랍 지구가 섬인 듯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같은 아랍 지구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끼리도 아예 뚝 떨어져 있다. 역사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은 이번처럼 주로 가자지구에 집중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의 비밀기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극적인 화해를 했던 적도 있었다.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 총리 이자크 라빈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아라파트가 평화협정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이 지역의 평화를 약속했다. 감격의 그 순간이 바로 '오슬로 협정'이다. 이 평화협정은 환호 속에 이루어졌고, 그 결과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은 1994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모두가 전쟁이 끝났다고 확신할 즈음, 1995년 라빈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극우파 유대인에 의해서였다. 라빈 총리에게 그런 불운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중동 화약고 문제도 어쩌면 매듭이 지어졌을지 모르겠다. 

 

 

 마무리 

전염병 시국으로 온 세상에 비상등이 켜져 있는 이 마당에도 지구촌은 여전히 시끄럽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이번 충돌에 대해 "통제할 수 없는 위기"라며 이 사태가 빨리 중단되기를 촉구하고 있다. 종교적 갈등만큼 역사적 원한도 깊겠지만, 그보다는 권력을 얻기 위한 하마스의 공작으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로, 빈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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