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역사박물관에 옛날 학교와 관련된 전시 공간이 있다. 교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중생 겨울 교복과 여고생 여름 교복이다.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그때처럼 다림질해서 각도 잡아놓았다. 핀으로 고정해 중고생의 발랄한 느낌도 연출했다.
나는 교복이란 것을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세대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교복이 바로 없어졌다.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율화가 시작된 것이다. 한창 고도성장기였기 때문에 교복이 사라지자 나이키 같은 비싼 옷들이 바로 학생들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프로스펙스, 아식스 같은 국산 제품들도 나이키 못지않은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학생들 간에 위화감도 생겨났다. 그런 이유에선지 내가 중고교를 다 마치고나서 몇 년 후 지금처럼 교복이 하나둘 부활했다.
교복에 비하면 두발은 사실상 자율화가 천천히 적용됐다. 남학생들의 경우 빡빡 밀지만 않을 정도였고, 여학생들도 귀밑 4센티미터는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한동안 불문율이었다. 5대 광역시 중 하나였으니 시골학교도 아니었는데 두발은 교문에서부터 엄격히 규제당했다. 그 속에서도 표가 거의 나지 않는 '앞머리 핑클파마' 정도 멋을 부리는 아이들은 있었다.
교과서 표지만 보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때 교과서 한 권을 최근까지 가지고 있다가 버려놔서 그때 종이의 질감은 안다. 표지를 기억 못 하는 이유는 그대로 가지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는 교과서는 받자마자 바로 책 표지를 쌌었다. 책이 지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던 때였다.
졸업장과 개근상도 진열되어 있다. 지금처럼 무상교육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보다 더 윗세대들은 졸업장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내가 다니던 때는 그나마 부모들이 자식 교육만큼은 열성적일 때라서 학업을 중단하는 애들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시골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하며 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고생 아이를 연탄 때는 자취방에 홀로 두고 돌아가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
국민학교의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많이 익숙하다. 학교에서 벌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집에서는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저 벌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처음에 무릎 꿇고 있다 보면 다리가 저린다. 서서히 오른쪽 아이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쪽저쪽으로 몸의 중심을 옮겨보다가 그래도 다리가 아프면 왼쪽 아이의 모습이 된다. 무릎에 몸의 무게를 다 싣다 보면 결국 또 무릎이 아프고 그럼 다시 주저앉아 처음의 자세가 된다. 무한 루프에 걸리지만, 그 또한 반칙인지 어른들의 눈에 띄면 벌이 길어질 수 있었다.
책걸상까지 그때와 똑같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딱딱하고 무겁기만 하던 책걸상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교실에는 초록색이 많았다. 칠판, 책상, 교실 뒤 그림을 걸기 위해 부직포를 붙여둔 공간까지도.. 정면에 태극기가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교훈과 급훈이 걸려 있다. 난로의 연통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칠판을 보던 기억도 난다.
보통학교 간이학교 시절의 교과서, 통신표(성적표)와 함께 주판도 전시되어 있다. 지금의 주판과 달리 하단에 알이 다섯 개다. 상단에 알 하나는 5를, 하단의 알은 각각 1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 주판은 한 줄이 9가 되어 십진법에 의해 올리고 내리는 식으로 계산한다. 이 주판은 한 줄이 10이 되는 형태다.
나는 주산을 1단까지 땄다.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모르고 어려운 형편에도 집에서 주산학원만큼은 오래 보내주셨는데, 그 재능을 엉뚱한 데다만 썼다. 거의 매년 학교 시험 때마다 집에도 못 가고 선생님들 부탁으로 시험 성적 통계를 내는 일을 내가 했었다. 계산기가 대중화되고 나서 주판은 서서히 사라졌는데, 최근에 다시 주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수학 관련해서 배우는 아이들이 많아졌나 보다. 나도 한때는 천 단위 덧뺄셈, 세 자리 곱하기 두 자리 곱셈 정도는 암산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계산기가 편하다.
역사박물관에서 옛날 물건들을 보면서 옛날 기억도 소환해 보았다. "라떼는 말이야~"는 재미 없지만, 같은 '라떼' 세대는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나 같은 사람은 박물관에 가면 아주 옛날 옛적 전시라도 꼼꼼하게 훑는다. 누군가 썼던 물건이고 나름의 사연이 있을 물건이기 때문에 각별한 느낌이 든다. 사진 속에 주판도 기증품인 듯 누군가의 이름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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