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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영화 '1917', 전쟁 속에 체리꽃이 피다

by 비르케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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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은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샘 멘데스 감독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2020년 2월에 개봉되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상미도 탁월하고 OST도 영혼을 울리는 듯 다가온다. 

영화 '1917', 전쟁 속에 체리꽃이 피다

★ 아래 포스트는 모든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음 ★

영국군 일병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적진을 향한다. 독일군의 계략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든 영국군 부대 데본셔 연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블레이크의 형이 이 부대에 있기 때문에 블레이크에게는 특히나 막중한 임무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

독일군 진지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스코필드. 다행히도 옆에 블레이크가 있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군이 퇴각한 길을 따라 다시 전진한다.

 

비어있는 농가로 진입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하얀 체리꽃이 가득 피어 있는 어느 농가에 도착한다. 전시임을 잊게 하는 환한 체리 꽃밭에서 블레이크는 잠시 과수원을 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그 집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은 스코필드..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까 전부터 공중에서 계속 접전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 비행기 중 한 대가 추락하는가 싶더니, 그들 쪽으로 그대로 돌진해 온다. 

 

두 사람은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에서 조종사를 끌어낸다. '편하게 보내주자'는 스코필드와 '살려주자'는 블레이크.. 스코필드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을 가지러 가는데, 조종사가 순식간에 블레이크를 공격해버린다. 치명상을 당하고 맥없이 쓰러져 버리는 블레이크다. 여기서는 블레이크가, 영화 뒤편에서는 스코필드가 적을 살려주고자 했다가 위기를 맞는다. 기본적인 인간미마저 짐이 되어버리고 마는 광기 어린 전쟁이다. 

 

사진 속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블레이크

'나 이제 죽는 거냐'고 묻는 블레이크에게, 스코필드는 '그럴 것 같다'라고 대답한다.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헛된 희망보다 생을 정리할 마지막 시간을 주는 게 더 낫겠다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브레이크의 부탁으로 그의 주머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사진을 보며 서서히 의식을 잃는 블레이크.. 사실 블레이크가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몰랐다. 

 

적군 비행기의 추락을 확인하러 온 다른 영국군 부대의 도움으로 트럭을 얻어 타게 된 스코필드. 그의 눈동자가 충격과 상실감으로 완전히 텅 비어 있다. 

 

스미스 대위

중간에 다리가 끊겨 트럭이 우회로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였다. 차에 탈 수 있게 해 준 스미스 대위에게 이별을 고하는 스코필드. 스미스 대위는 그에게 충고 하나를 남긴다.

명령을 고할 때는 공개된 장소에서 하라고. 자신의 명예와 욕심 때문에 계속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그 명령에 불복하기 어려움을 주지시켜 준 말이다. 공감이 많이 가는 충고다. 

 

끓어진 다리를 건너 적진으로

끊긴 다리를 건너, 강 반대편 독일군의 진영으로 들어간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무 수행을 위해 지나야만 하는 길이다. 계속되는 총격전.. 쫓고 쫓기다 결국 스코필드는 다시 강으로 뛰어든다.

 

나무 둥치를 붙들고 떠내려가는 장면

숨 막히는 추격에서 벗어난 때문일까, 물에 유유히 떠 가는 그의 모습이 문득 여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블레이크를 떠올리게 하는 체리꽃

물에 하얀 체리꽃 꽃잎들이 떠간다. 지금이 전쟁 중이란 사실도 잊어버릴 만큼 잠시 망중한이다. 그도 잠시, 강 어귀에 다다르자 눈에 보이는 처참한 광경에 스코필드는 혼비백산 정신이 나가버린다.

물에 겹겹이 쌓여 둥둥 떠 있는 시신들... 물에서 사투를 벌이느라 이제는 비무장 상태라서 공포와 적막감이 극에 달해 있을 그다. 그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온다. 영어 가사다. 아군이 가까이 있다는 증거. 

 

영국군들이 모여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 천상의 것과도 같은 맑은 목소리다. 편안한 대상을 염원하는 노래 가사에 모두들 숙연하다. 그곳은 그가 그리도 찾아 헤매던 대본셔 연대였다. 스코필드는 맥켄지 중령을 찾아 작전지의 최전방으로 정신없이 달려간다. 이 공격을 꼭 멈추게 해야만 한다.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는 맥켄지 중령

공격 중지 명령을 가지고 왔다는 스코필드의 보고를 중령이 무시한다. 스미스 대위의 충고를 상기케 하는 장면이다. 굴하지 않고 명령서의 내용을 모두의 앞에서 읽는 스코필드. 그제야 중령이 돌아선다.

 

이번에는 끝장을 내버리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1600명의 연대를 동원해 여기까지 왔으니 사욕이 없었을 리가.. 어딘지 아쉬움이 묻어나는 중령의 얼굴이다. 

 

아직 남아있는 하나의 임무까지 마저 수행하는 스코필드. 죽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블레이크의 죽음을 알리고 유품을 전한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슬픔일 텐데, 블레이크의 형에게는 중위로서의 책무가 있다. 쓰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코필드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며 정신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중위.. 들었던 말을 다시 묻는 모습에서 동생을 잃은 그의 마음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분위기상 남자라면 당연히 참전해야 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조차 알 수 없게, 서로가 무참히 저지르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나라마다 신형 무기의 각축장이기도 했으니 누구도 이 정도 끔찍한 전쟁이 될 거라 예상치 못 했다. 

영화 1917, 전쟁의 그늘에서 만나는 봄날이 사람을 나른하게, 무기력하게 한다. 

"이맘때면 꼭 눈이 내린 것 같아."

전쟁 속에  하얗게 피어난 체리꽃 들판을 거닐며 블레이크는 어머니를 회상했다. 그래서 였을까, 다친 사람일 망정 적을 껴안다니.. 결국 적에게 치명상을 입은 블레이크의 눈빛에는 황당함과 억울함이 어려 있었다. 죽이고 싶지 않아도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치고들어오는 적... 앞서 블레이크가 그랬듯, 스코필드 또한 독일군에게 발각되었을 때, 소리치지 않으면 살려줄 것임을 눈으로 이야기했지만.. 손을 떼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통에 결국 그를 죽이고 도망쳐야만 했다. 

물결 따라 흘러오는 체리꽃 꽃잎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선율 고운 노래는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정신을 놔버리게 만든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차라리 눈 감아버리고 싶은 마음일 것도 같다. 전쟁 속 체리꽃은 그래서 전쟁만큼 잔인하게 내게는 느껴졌다. 전장으로 병사들을 보내기 전 누군가 부르던 아름다운 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를 만나러 그곳에 갑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요단강 건너 갑니다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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