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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오래된 책 속에 오래된 서점의 흔적, 광주 나라서적

by 비르케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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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세상은 지고 있어도 아날로그 감성은 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샀던 책을 보며 오래된 흔적의 기억들과 싸워본다. 어느 정신분석학자가 말하길, 잊으려고 노력하는 기억은 잊혀진다고 했다. 역으로,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단편들은 퍼즐처럼 끼워맞춰지곤 한다. 

 

오래된 책 속에 오래된 서점의 흔적, 광주 나라서적

 

몇 달 전 급히 필요한 책이 있어서 문이 열린 서점을 찾아 다녀왔다. 서점은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여남은 개 내려가자마자 조금은 적응이 안 되는 침침한 공간과 마주했다. 갑자기 불이 나갔는지 천장에 달린 형광등 하나가 깜박거렸다. 다른 형광등이 여러 개 달려 있었지만 고장난 형광등 한 개 때문에 급기야 괴기스러운 느낌마저 들 정도로 침침하던 공간에, 사장님으로 보이는 연세 지긋하신 분이 카운터에 앉아계셨다. 생각 외로 손님이 찾고 있는 책도 금세 파악하고, 책들이 있는 위치도 다 꿰고 계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찾는 책은 그곳에 없어서 그냥 나와야 했다. 나오면서 입구를 다시 보니 '초중고 교과서 판매처'라고 되어 있다. 그러고보니 서점에 다른 책들과 함께 학생들 참고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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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사양길이라는데 아직까지 오래된 서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들은 그 업이 천직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서점도 대형화되었고, 또 그 후 어느 순간부턴가 대형 서점들도 문을 닫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카페에 온 듯 화사하고 안락한 분위기속에서 진열된 책들을 맘껏 봐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던 그런 곳들도 문을 닫는 마당에, 동네 어귀의 작은 서점들의 사정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어나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90년대 광주 나라서적에서 산 책' data-ke-mobilestyle=
오래전 광주 나라서적에서 산 책

 

오래된 어느 책 속에서 어떤 서점 하나를 떠올려본다. 오래전 광주 충장로에 있던 나라서적이다. 서울에 강남이 있다면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었다.

 

광주에도 여러 개의 새로운 주거단지들이 만들어지다보니 지금 광주의 핫플레이스는 어디인지도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충장로의 입지는 광주에서 단연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충장로 중에서도 가장 핫한 자리인 우체국 사거리에 나라서적, 궁전제과 등이 있었다. 궁전제과는 역사적인 그 자리에서 아직도 영업 중인 것 같지만, 나라서적은 한참 전에 사라지고 없다.

 

 

나라서적에서 산 책 날개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앞 뒤 장에 다 붙어 있어서 두 군 데 다 이런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자국들이다. 

 

 

 

90년대 광주 나라서적에서 산 책' data-ke-mobilestyle=
 기억속의 광주 나라서적

 

 

책의 뒷면에는 테이프와 함께 서점의 위치 등이 적힌 표식도 남아 있다. 아마도 지금처럼 CCTV 같은 게 발달된 시대가 아니었기에 나름의 방법으로 판매 서적을 표시한 게 아닐까도 생각되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표식의 맨 하단에는 해당 책 제목 첫 두 글자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나라서적에 대한 나의 기억은, 지금 내 나이 정도 되는 여사장님의 미소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책을 사려고 돈을 꺼냈는데 책값이 부족했다.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돌아서려는데 사장님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조금 부족한 것도 아니고 한참 부족한데도 순진하게(?) 말씀드렸는데 사장님이 그것만 달라 했다. 아마도 자식 뻘의 어린 학생이 책을 사려다 못 사는 게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지금 떠올려도 상당히 충격적인, 그러면서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서점들이 사라지고 운영이 어렵지만, 책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산다. 때로 오늘에 초점이 맞춰진 책도 있지만, 과거나 미래에 초점이 맞춰진 책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서서히 과거의 사람이 되어간다. 미래도 좋지만 때로 과거에도 현재의 답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을 읽는 일은 현재와 만나고,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만나는 일이다. 오래된 서점들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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