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은 주로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로만 다니거나 차로 쓱 지나가기만 했던 것 같다.
볼일 다 보고 배는 고픈데 뭐 좀 사 먹을까 잠시 주위를 배회했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선뜻 들어가지 못 하고 그냥 한 바퀴 돌았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긴 한데, 학교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이 무슨 시험을 보고 왔다 했다.
그때는 영어 선생님을 'ET(English Teacher)'라 불렀다.
요새 줄임말에 비하면 참 재미없지만, 암튼, 시험의 정답이 '마천루'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마천루'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 단어는 제외하고 답을 골랐다는데, 정답은 '마천루'였다.
"너네들 중에 마천루라는 단어 아는 사람 있어?"
아무도 그 단어를 안다고 나서지 않았다. 우리의 ET는,
"거봐, 없지?"
라며 자신이 틀린 게 당연하다고, 무슨 그런 문제를 내냐며 혼자 핏대를 세웠다.
그 마천루들 속에,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 지금의 내가 있다.
마천루를 몰랐어도, 이런 건물들이 없었던 그 시간 속으로 타임리프를 해서, 마천루라는 단어 하나에 억울해하던 그 ET를 위해 같이 핏대를 세워주고 싶어진다.
"무슨 그런 문제를 냈대요?"
"그게 우리나라 말 맞아요?"
롯데월드 몰을 밖에서 사진으로 담아보기는 처음이다.
금속성 색채의 서늘함에, 겨울이라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몰 외관이다.
직진해서 오른쪽으로 돌면 롯데월드 타워가 있고, 또 그 옆으로 롯데월드가 있다.
상가 안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면서 사진 찍는 걸 깜박했다.
오늘 깜박 잊어버린 롯데월드 타워 사진은 언제 또 찍을 일이 있을지...
'롯데월드 타워 전경을 사진으로 담아보기는 처음이다.'
아마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이렇게 쓸 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이든 광역버스든 타려면 늘 이 공간으로 향한다.
위에는 자동차들이 지나고, 아래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다.
지난번에 여기 말고 어느 다른 지하상가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에 내가 알던 모습과 달리 너무도 쇄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실에 지하상가는 겉보기일 망정 빈 상가가 그리 많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엄청 싼 가격에 팔고 있어서 오는 길에 감사히 득템을 하고 왔다. )
우연히 펼쳐 든 책에서 다시 나의 꿈을 만났다
지하로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교보문고의 광고판 문구가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꿈을 만날 나이와는 멀지만, 이제껏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책을 통해 만나기는 한다.
"인생 뭐 있니? 다 그런 거야."
하다가도,
"이런 거였구나. 진즉에 알았더라면..."
하거나,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었네."
이렇게 겸허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기억 속의 ET처럼 나도 좀 억울한 느낌이 든다.
"너네들 중에 인생이란 거 아는 사람 있어?"
ET의 '마천루'처럼, 잘 모르는 인생에 대해 시험을 계속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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