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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 사진 한 장 - 1978년 광주 동명동 농장다리(동지교)

by 비르케 2022.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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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광주 동명동 일대를 돌아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에는 다행히 기억을 떠올릴만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모습도 사라질 것 같아 사진으로 몇 장 담아왔었다. 

 

오래전 사진 한 장 - 1978년 광주 동명동 농장다리(동지교)

 

광주 동명동은 광주의 중심이었던 충장로, 금남로를 도보로 오갈 수 있는 동네다.

반대 방향으로는 광주고등법원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주변에 시장만 해도 세 개나 됐었다.

대인시장, 산수시장, 도내기시장, 이렇게 세 군데 시장을 골라 다녔다.

(대인시장은 규모가 역대급이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보니 많이 쇠잔한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말해 광주에서 제법 살기 좋은 동네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먼저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 보여줄 사진을 보면 절대로 잘 나가던 동네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래된 사진이고,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78년 11월 광주 농장다리

 

이 사진은 내가 어릴 적에 친척이 찍어준 것이다.

사진 중앙에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포토샵으로 들어내고 나니 역사적인 사진이 됐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만 보았을 뿐, 정작 농장다리의 옛 모습은 이제야 새롭게 본다. 

이렇게 앙상한 모습의 농장다리는 그동안 나의 기억에도 없었다.

농장다리 위를 지나고 있는 저 지프(코란도?)의 모습도 새롭기만 하다. 

 

기찻길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저런 낭떠러지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다닥다닥,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의 집들이 존재했다.

사진을 찍은 이쪽은 그나마 넓은 행길이다.

 

그날 이 길에는 교복 입은 남중생들이 팔랑팔랑 걷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까마득한 오빠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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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름 / 농장다리 아래 철로가 있던 자리

 

어린 시절 떠나온 그 동네를 4년 전쯤 다시 찾아보았다.

더 이상 이 길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1978년에 찍은 사진 속 철로는, 이제 주민들을 위한 산책길로 조성됐다. 

흙을 상당량 메워 지반을 높인 모습이다. 

 

 

2018 여름 / 농장다리의 원래 이름은 동지교

 

농장다리의 원래 이름은 '동지교'였던가 보다. 

다리 한쪽에 '동지교'라고 다리명이 새겨져 있었다.

 

유년 내내 살면서도 그저 '농장다리'였는데, 그간 몰랐던 '동지교' 라는 이름이 새삼스러웠다.

 

지방의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농장다리 일대도 주변 신도시들에 밀려 쇠락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다가 원도심 개발이 차츰 진행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나마 4년전 추억이 깃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던 게 다행이다. 

최근에 로드뷰를 보니 농장다리 인근은 이제 완전히 딴 동네가 되어 간다. 

왠지 모르게 낯선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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