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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석류 보며 남동생 생각

by 비르케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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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 엄마가 석류를 사셨다. 설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과일이고, 평소 맛이 시고 먹기도 불편하다고 찾지도 않으시더니, 딸이 둘이니 장 보다가 생각나셨던가 보다. 여자들에게 좋다는 석류인데, 엄마 말로는 만원에 세 개라고, 셋이서 하나씩 먹으려고 사셨단다. 

 

석류를 보며 남동생 생각

석류 까는 법

석류를 가른다. 속이 이렇게 몽글몽글한 입자들로 되어 있으니 칼을 최소한으로 쓰고, 되도록 손바닥으로 힘을 조절해 가며  쪼개서 석류알을 살살 걷어낸다. 조각낸 석류는 그대로 두면 곰팡이가 생기기 때문에 낱낱이 알맹이를 분리해 냉장고에 보관하면 편하게 오래 먹을 수 있다. 양이 많다면 지퍼팩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두고 먹으면 좋다. 

 

 

석류 까는 법

 아무리 여자에게 좋다고 엄마랑 여동생, 그리고 나만 먹자니 친정식구중에 제외된 한 명, 남동생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는 누나들 틈에 끼어 함께 놀고 싶어서 인형놀이, 공기놀이도 하던 남동생... 엄마 화장품 덕지덕지 발라 화장시켜 줘도 가만히 있어서 예쁘게 꾸며 여동생이랑 둘이서 손으로 가마 만들어 태워주곤 했었다. 한 손으로 다른 손 손목을 잡고, 여동생 손과 합체하면 남동생 태울 꽃가마가 완성됐었다.

 

 

석류 까는 법

석류를 알맹이만 다 걷어내니 이만큼이나 나왔다. 조심스럽게 까면 과즙도 거의 없이 반짝거리는 알맹이만 모을 수 있다. 석류는 잘 알려졌다시피, 갱년기 여성들에게 좋은 과일이다. 더군다나 엄마가 나이 든 딸에게 주려고 사 오신 거라 고맙게 먹는다.

 

 

껍데기를 제거한 석류 알맹이들을 몇 숟가락 떠내 다른 그릇에 담았다. 둘째 녀석이 어릴 적에 힘자랑 하느라 목을 구부린 숟가락을 다시 폈더니 이렇게 우글거리는 모습이 됐다. 숟가락 참 오래도 쓴다. 

 

 

빨갛고 투명한, 시큼하고 달달한, 그리고 상큼한 석류 맛을 본다. 맛있다. 친정 식구 중에 유일한 남자, 남동생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이런 맛있는 걸 혼자만 빼놓았으니... 그런데 울 남동생은 옆에 있어 먹어보라고 해도 누나 먹으라고 기어이 안 먹을 착한 동생이다.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차라리 나가버린다. ㅎㅎ

 

 

누나들 틈에서 인형놀이 할 때, 제일 안 이쁜 인형을 줘도 끼워주기만 하면 좋아라 하던 남동생은 어느 순간 우리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남자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심부름 잘하고 힘쓸 일이 있으면 손수 나서준다. 자라면서 특히 큰누나인 내게는 말대꾸 한번 안 한 착한 동생 그대로다. 석류 알맹이를 씹으며 착한 남동생 생각 제대로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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