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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죄 짓고는 못 살 것 같은 나, '경찰'이라는 말에..

by 비르케 2009.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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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은 시각, 인터폰이 울려서 누구인가 했더니, 집을 관리해 주는 하우스마이스터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프라우 **, 지금 남자 두 분이 아래 기다리고 있는데, 올려보내도 될까요?"
밤 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남자 두 사람이라니 이건 또 뭔일인지.. 더군다나 그들은 왜 내집 벨을 두고 하우스마이스터에게 부탁을 따로 한 것인지.. 정말 의아하더군요.

"누군데요?" 
하며 묻는 제게 그가 답을 합니다.  

"경찰이예요."
"경찰?... 왜요?"
"나도 잘은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프라우 **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이들이 뛴다고 누군가 신고를 한 건가도 싶고, 아니면 영화에서나 보듯이 아무 죄도 없는 내가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이대로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가는 건가도 싶고, 난생 처음 경찰이 내 집에 왔다는 말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올려보내달라고 하고는, 그들이 올라오는 짧은 시간동안 정말이지 속이 타는 듯 하더군요. 길을 걷다가 경찰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들의 권총을 아이들과 신기하게 바라보던 때도 있었는데, 그런 경찰이 실제로 나를 방문했다 하니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뛰었습니다. 

                                             <사진출처 - 바이에른 경찰 Polizei Bayern>

드디어, 두 명의 경찰이 현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다자고짜 서류 하나를 건넸습니다. 서류에는 사건 기록과 함께, 저와 비슷한 이름 하나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 있더군요.

"이 이름, 
당신인가요?"

"아닌데요."
"그럼 당신 이름은 뭔가요?"
이름을 말해 주었습니다.

제 이름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독일에 살면서 흔히 이런 말을 듣게 하는 이름입니다. 
"당신 이름 참 쉽네요. 동양인들 이름 대부분 발음하기 어렵던데, 당신 이름은 정말 최고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터키쪽 사람중에 저랑 이름이 같은 사람도 보았습니다. 
발음이 비슷한 서양쪽 이름도 간혹 있었구요. 한국에서도 '좋다', '예쁘다'는 말을 이제껏 듣게 하던 이름이었거늘(그런 면에서 아버지에게 감사하라는 말도 수차례 들었죠), 외국에 나와서까지 편리하게 발음이 되니 더 금상첨화였건만, 비슷한 이름때문에 드디어 독일 경찰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알파벳을 쓰지 않는 나라의 경우, 우리처럼 맘 먹기에 따라 다양하게 표기될 수 있는 영문 이름들을 따로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그들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다 방문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언뜻 들은 이름을, 퍼즐 맞추듯 몇 개의 이름으로 만들어 보고, 거기에 해당된 이들을 찾아다니는 지도 모르구요. 여권도 보여주고 몇 가지 질문에 답도 하고 나서야 그들은 고맙다는 말만을 남긴 채 돌아갔습니다. 

단 몇분이나마 가슴 졸였던 그 순간이 지나고 나자 갑자기 행복해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죄를 지어선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요.
정말 그랬다가는 심장이 떨려서 아마도 제풀에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 옆에 서 있던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안심하라며 사정이야기를 해주니, 아이들은 의외로 배시시~ 웃으면서, 경찰아저씨가 우리집에 오니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ㅜㅜ)

저도 아이들처럼 정말 순수하다면 경찰이 우리집에 온 걸 그렇게까지 무서워는 안 했을 텐데, 늘 죄 짓고 산 적 없다 자부하면서도, 정작 '경찰'이라는 말에는 한없이 작아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길에서 초록색 제복을 입은 경찰을 만나도 예전처럼 아이들과 권총을 구경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희집 하우스마이스터, 저랑은 간혹 대화도 나누고, 잦은 고장에 집에도 가끔 들르는 분인데, 저를 설마 범죄 용의자 선상에 둔 건 아닌지... 그건 정말 싫은데요. 귀찮더라도 만나면 설명을 해줘야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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