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떨어지는데..
찔레꽃 피면 내게로 온다고
노을이 질 땐 피리를 불어준다고 그랬지
찔레꽃 피고 산비둘기 울고
저녁 바람에 찔레꽃 떨어지는데...
양희은의 노래 '찔레꽃 피면'의 첫대목이다. 하고많은 꽃 중에 왜 하필 찔레꽃일까. 예전부터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찔레꽃이 피는 4~ 5월이면 꽃놀이 가기 딱 좋은 때다. 찔레꽃 피면 돌아오겠다는 말은, 그 좋은 시절을 혼자 보내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달력이나 시계가 없을 때는 이런 식으로 약속을 했던가 보다. 시계가 보편화된 다음에도 한참 동안 이런 가사가 사라지지 않았다. 명확한 시간에 비해 약간은 더 추상적인 시간의 공백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저녁 바람에 찔레꽃 떨어지는데, 온다던 사람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노래 후반부에 보면 차가운 땅에 누워있다고 하니, 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있다.
'찔레꽃' 떠올리면 생각나는 또 다른 노래다. 이 곡은 '가을밤 외로운 우는 밤'으로 시작되는 동요 '가을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가사 앞부분은 찔레꽃 피는 봄이, 뒷부분은 벌레 우는 가을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찔레꽃'이라는 노래 따로, '가을밤'이라는 노래 따로 불려지기도 한다. 찔레꽃 피는 계절에 엄마 일 나갈 때 차마 따라가지는 못 하고 애가 타 찔레꽃만 따먹던 아이는 가을에도 여전히 엄마품을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은 한층 더 슬프다. '찔레꽃 향기는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울만큼 다 울어버리면 듣는 사람 맘이라도 편할 텐데, 애잔한 시선으로 알듯 모를 듯한 표정만 자아낸다. 그래서 듣는 사람도 더 슬퍼진다. 슬프게 들으면서 무엇이 그리 슬픈지, 슬픔의 근원을 찾고 싶어 진다. 감상에 젖어 슬픈 게 아니라 노래가 너무 슬퍼서 감상에 젖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문득 찔레꽃 향기가 슬프게 느껴진다. 장미나 아까시, 라일락 같은 화려한 향기는 아니지만, '알싸한' 그리고 '풋풋한' 향기가 난다. 화려한 꽃그늘 아래 보일 듯 말 듯, 때로는 쓰레기통 옆에 담뱃재를 뒤집어쓰고도 은은하게 뿜어내는 소탈한 향기다.
찔레꽃에 얽힌 노래나 시는 다른 꽃들에 비해 서글픈 느낌이 많이 난다. 꽃잎이 지는 모습도, 길게 말리면서 뚝뚝 떨어지는 것이, 마치 눈물과도 같다.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전설 때문에 그런 꽃말이 붙었을까, 그런 꽃말 때문에 전설이 생겨났을까. 누군가에게 찔레의 전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옛날 어느 마을에 '찔레'라는 처자가 살았대. 여몽전쟁 끝에 몽고로 끌려간 공녀 중에 찔레도 포함되어 있었어. 세월이 흘러 공녀로 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그녀들을 '환향녀(還鄕女)' → '화냥년'으로 부르며, 몸 망치고 돌아온 몹쓸 여자로 매도해버렸지. 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니 끌려갈 때 이미 전쟁터였던 고향이 그대로 있었으려구. 찔레는 돌아왔지만 가족들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어. 찔레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어, 환향녀와 결혼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말이야. 결국 찔레는 자진을 하고 말았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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