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완연하게 풀린 게, 확실히 봄이다.
연못에 오리 한 쌍이 따뜻한 봄을 한껏 즐기고 있다.
원래 이 연못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라 실제 보면 실망하게 되는 곳인데, 카메라에만 담으면 물빛이 이렇게 멋지다.
나무 그림자에도 초록빛 봄이 느껴진다.
"어서와, 봄에 온 건 처음이지?"
길냥이 한 마리가 나를 맞아준다.
지난여름 이사를 왔기 때문에 봄에 이 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나무마다 새순이 돋아 있다.
이 나무는 잔가지를 따라 새순이 위를 향해 달려 있다.
나무도 사람처럼, 가지를 뻗는 모양 다르고 새순이 돋는 방법도 하나하나 다 다르다.
지난 겨울 철새들의 아지트였던 팔당대교 아래..
봄이 오는 걸 어찌 알았는지, 고니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은 이미 북쪽 나라로 돌아가고 없다.
사람처럼 짐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새들이 떠나고 난 자리는 어지러질 일이 없이 말끔하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철새들도 있다.
그런데 다가가려던 그 순간,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라 하늘을 수놓았다.
동영상으로 담으려고 얼른 카메라를 꺼내 눌렀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엉뚱한 버튼을 연달아 눌러버렸다.
동영상 옆에, 슬로우 모션, 하이퍼랩스 등 뭔지 알 수 없는 단추들을 골고루도 눌렀다.
그리고 '어떡해 어떡해' 하는 동안 잠깐의 군무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저들의 군무를 영상으로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한 번만 더 날아올라라 하고 기다렸는데..
참 도도한 그들이다.
그런 장관을 카메라에 담지도 못 하고, 허겁지겁 동영상 단추 찾느라 눈으로도 제대로 못 봤으니...
그 군무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조건이 다 맞아야 하는 것을.
어쩌면 한번 더 산책길에 그 순간을 잡을 수도 있고, 내년에 겨울철새들이 다시 올 때서야 잡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내년에도 못 잡을 수도 있다. 아깝다.
새들의 군무를 기다리다 어둑어둑해졌다.
내 앞에 선 나무님의 자태가 참 고와서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나무들과 오솔길이 석양을 만나 만들어내는 실루엣으로 마음을 달래보기로 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이 합일점을 찾아, 내가 원하는 순간이 돼야 비로소 맘에 드는 사진이 되는 건데..
찰나를 잡는 게 행운인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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