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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TV문학관 <홍어>, 오랜 기다림과 떠남

by 비르케 2021.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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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문학관 < 홍어 >를 보았다. 장편소설 < 객주 >를 쓴 김주영 작가의 소설을 단막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TV 문학관은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중의 구미에 맞춰 만들어진 다른 극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프로그램이다. 그 명맥이 끊겨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된다. 

 

TV문학관 < 홍어 >, 오랜 기다림과 떠남

 

TV문학관 홍어
TV문학관 <홍어>, 2001년 방영

 

TV문학관 <홍어>에는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번듯한 집안의 처자였지만 가정을 등한시하는 남편을 만나, 남의 여자와 함께 도망쳐버린 그를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그녀다. 삯바느질로 근근이 살아가며 남편이 돌아올 날을 위해 문설주에 홍어를 매달아 두고 기다린다. 

 

 

 

TV문학관 <홍어>-삼례와 세영의 기억속의 한때

 

TV문학관 <홍어>에는 사춘기 소년의 아픈 성장기도 함께 들어 있다. 집 나간 아버지,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밤늦게까지 삯바느질을 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어머니를 둔 세영이다. 어느 날 이 집에 집 없이 떠돌던 삼례가 찾아온다. 세영은 삼례를 통해 난생처음 사랑에 눈을 뜬다. 오갈 데 없는 삼례를 받아들였지만, 삼례는 말썽만 피우다가 어느 날 자전거포 젊은이와 함께 마을을 떠나버린다. 삼례역은 고() 정다빈이 맡았다. 한껏 발랄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TV문학관 <홍어>-눈 내리는 날

 

이 작품에는 유달리 눈 내리는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집이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서 눈보라가 산을 타고 바람에 날리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그대로 묻힐 수도 있을 것 같은 집에, 떠난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한다. 

 

 

 

TV문학관 홍어-삼례
TV문학관 <홍어>-삼례

 

떠났던 삼례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이 아닌, 색시집에 색시로 와 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삼례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성냥을 그어 얼굴에 대보는 세영, 어린 세영의 표정에서 수줍은 사랑이 보인다. 삼례는 세영을 꼭 안아주며 정처 없이 떠도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운 듯 눈물을 흘린다. 

 

 

TV문학관 홍어-어머니
TV문학관 <홍어>-삼례에게 돈뭉치를 전하는 세영의 어머니

 

몸은 개천에 빠져 있는데 마음은 항상 구름과 같이 떠다녔지
그런데 이젠 가슴이 홀가분해졌다
...
그 돈이 수중에 있을 때는 꿈자리마다 원수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수백리 타관을 헤매고 다녔던 터라
잠을 자고 일어나도 두 다리가 저리다 못해 아프고 
잇몸에도 피가 맺히고 
억울했다.

세영의 어머니는 남편을 찾아가려고 모아두었던 노잣돈을 삼례에게 줘버린다. 품삯으로 받은 돈 중에 새 돈만 골라 한 닢 두 잎 모은 돈뭉치였다. 이 마을이 조용해지기 위해, 세영을 위해, 그렇게 삼례를 떠나보낸다.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게로 가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할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막상 노잣돈을 모으면서도 수많은 눈물과 고민들로 밤을 지새웠을 법한데, 그 돈을 이제 삼례에게 줘버렸으니 굳이 남편을 찾아갈 일도 없고 뭘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꿈자리가 뒤숭숭할 까닭도 없어졌고 마음이 구름 위에 얹혀있을 핑계도 없다고 그녀는 아들인 세영에게 말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러 갔다 왔다고?"

"예"

"니 나보고 '예'라 했나?"

"예"

 

(어머니의 아픔에 함께 울곤 하는 착한 아들 세영,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당돌한 반응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시기 아이들의 가끔 이런 반응에 처음에 화를 내본 적이 있는 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시기에 악의로 이런 대답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씩 뭔가에 혼이 나가는 때가 있을 뿐. )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삼례가 떠나버리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것은 세영도 마찬가지다. 뭔가 말하려다 마는 세영의 어머니, 어머니도 아들의 이런 아픔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세영을 안아주며, "무명치마는 빛이 바랠수록 눈부신 법이다."라는 말과 함께, 더 어른스러워질 것을 당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들이 아픔을 견디고 일어서주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읽게 된다. 

 

 

TV문학관 <홍어>-돌아온 아버지

 

기다림이 길어지면 무엇이 될까?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왔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무엇이 되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이 극의 마지막 부분이 이해가 간다. 

 

단막극인 데다, 문학작품을 각색한 작품이기 때문에 TV문학관의 결말은 대부분 열려 있다.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구미에 맞춰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줄거리나 결말에만 연연하기보다, 작품 속에 빛나는 대사들이나 복잡한 인물의 묘사에 더 초점을 맞추고 감상했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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