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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40

뷔르츠부르크를 추억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추억을 만들고,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기억을 잊어버린다. 또는 잃어버린다. 그게 사람임에도,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과거를 덜 잊어 때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게 나다. 어릴 적에도 나는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고, 지나간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지나간 일들을 되뇌는 것은 젊은이가 할 짓이 못 된다." 나는 소위 애늙은이.. 였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세월과 더불어 내 기억들도 분명 퇴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또 어디선가 예전처럼 비슷한 길과 느낌과 냄새를 되뇐다. 독일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년 전 살던 곳을 돌아본 적이 있다. 10년 전 살던 곳에 접어들어 느낀 가장 큰 감.. 2018. 8. 17.
낯선 곳에서 다시 마주치는 인연 학교 때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생각코 선물로 책상용 화분을 하나 샀는데, 그날 그 친구도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며 똑같은 화분을 내민 적이 있다. 둘 다 파란 색 화분에 심어진 나비란이었다. 순간 너털웃음을 날리고 말았지만, 뭔가 가슴에 섬뜩한 감을 느꼈던 건 나 뿐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런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꼭 필연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순간에는 마치 필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더군다나 강렬한 직감과 맞닥뜨렸을 때 직관은 때로 논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물건을 잡아야 할 것처럼, 이 사람을 놓쳐선 안 될 것처럼. 대학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발단은 성적표가 잘못 배달된 데서 비롯되었다. 동네 명까지는 같.. 2018. 7. 30.
바람 부는 날 친구 생각 바람이 웃는 소리 바람이 우는 소리 바람에는 열두 개의 문이 있고 삼백육십다섯 개의 혹은 삼백육십여섯 개의 다른 색깔이 있어 그 하나하나의 문을 열고 지나면 어른이 되는 크고 아름다운 길로... 그런 사랑으로, 그런 행복으로, 그런 꿈으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쁘라삐룬' 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이 우리나라 쪽을 향하면서 바람이 거세다. 휘이잉~ 소리를 내며 바람이 몰아치는 이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바람이 웃는 소리, 바람이 우는 소리...' 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그려준 그림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었다. 무슨 고민으로 힘들었던 것인지, 그런 나를 위해 친구가 메모와 함께 그림과 글을 실어 내 책갈피에 넣어두었다. 정성이 깃든 이 서화(?)를 받고 정말 기뻤던 그날의 느낌을.. 2018. 6. 30.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난 그녀들-3 프라이부르크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이 사진도 역시나 그때 사서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엽서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앞쪽으로 시계가 달려 있는 탑은 '슈바벤토어(Schwabentor)'이다. 이 부근이 프라이부르크 중심가다. 이곳을 부지기수로 지나다니던 날들이 어제 같은데, 참 세월이란 녀석.. 프라이부르크는 꽤 오랜 세월 오스트리아의 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다. 도시 이곳저곳에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샘물이 솟았고, 여기저기 길 가장자리로 작은 도랑이 흘렀던 기억도 난다. 이렇듯 멋진 도시에, 딱 시골에서 상경한 것 같았을 20대의 내가 있었다. 가져온 물건이라곤 옷 몇 벌과 책들, 그 외 딱 있어야 할 .. 2016. 10. 16.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난 그녀들-2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난 그녀들-2. 오늘의 주인공은 당시 내가 살던 곳의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집주인이다. 그녀는 이혼한 여자로, 따로 수입이 없는 주부다 보니 주변 어학원에 등록한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을 치고 있었다. 프랑스 공항에서 처음 그녀와 통화했을 때의 그 막막감은 사는 동안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눈치가 없었던 건지, 상대의 말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던 건지, 하필 나와 이름이 비슷했던 그녀는 내 주변 사람들을 이렇게 가지고 놀았다. "**이랑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응, 나야." 영어든 독일어든 나와 통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곤 해서, 한국에서 전화를 건 내 가족, 또는 어학원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들곤 하던, 어쨌거나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그녀였다. 그때는 핸드폰.. 201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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