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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40

즐거운 WG의 추억, 함께 부르던 Schaurig Traurig '세기말'이라 불리던,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두근거림이 있던 시간들을 20대의 나는 독일에서 보냈다. '세기말'이란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야말로 '명탐정 코난'에 자주 등장하는 그 단어와 함께, 마음마저 '도끼도끼(ときどき)'한.. ) 그때는 그리 두렵기까지 하던 그 단어가 이제와 돌이켜 보면 오히려 예전 추억이 듬뿍 담긴 따뜻한 느낌으로까지 다가오곤 한다. 첫 번째 독일행에 관한 이야기들은 앞서 동일 카테고리 안에 포스팅 한 바 있다. 지극히 개인사적인, 정리 차원에서 한 포스팅이기도 하고, 너무 오래 전 일이기도 해서 일부러 찾아볼 만큼 특별한 에피소드들은 아니다. 두 번째 독일행은 시작부터 내게 '행운'처럼 비춰졌다. 거기가 어디라고, 처음 도착한 역에서 아는 사람을 .. 2019. 3. 6.
90년대 투유 초콜릿 집에 있던 화일에서 오래 전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대학때 평소 안면만 있던 친구와 어쩌다 수업까지 제끼고 심금을 털어놓게 된 날이 있었다. 문학도 연극도 좋아하고 자유로움이 가득했던 그 친구는, 작은 아픔을 맛본 것을 계기로 한동안 침묵 속에 빠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갓 스무살을 넘겼을 때니 마치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 서로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컸던 탓인지, 친구는 내게 초콜릿 하나를 선물해 주었고, 나는 그 초콜릿을 아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도 포장지를 화일에 끼워두었던 건데, 일부러 버리지 않으니 언제고 화일째로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1992년 투유 초컬릿, "진하고 깊은 사랑의 맛"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 2018. 12. 6.
10년쯤 전 독일에 있을 때, 동네에서 인사 정도 하며 지내던 필리핀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먼저 자신의 집에서 차 한 잔 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니 현관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열네 살짜리 아들과 이목구비가 또렷한 그녀의 딸내미만 봐서는 그녀가 그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만 똑 떨어져 있으면 그 가족은 여느 독일 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독일 남자와 국제 결혼한 여자였던 것이다. 독일인과 결혼한 그녀는 몇 년이 지나 필리핀에 두고 온 동생을 독일로 불렀고, 동생도 오래지 않아 독일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동생은 언니와 같은 도시에 살면서 자주 오갔는데, 그러다 보니 나.. 2018. 8. 26.
페이샹, 이벤, 그리고 렌 그녀의 이름은 '伊文'이었다. 독일에 두 번째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완 출신 그녀를 알게 되었다.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살다가 내가 있던 도시로 공부를 하러 온 음대생이었다. 그녀와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당시의 나는 '페이샹'이라는 예전 친구를 많이 그리워했기에, 같은 동양인 여자애들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곤 했었다. '伊文'이란 자신의 이름을 두고, '네 이름을 한국에선 '이문'으로 발음한다'고 했더니, '이문'이든 '이벤'이든 발음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편하게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자기는 '패트릭'이 아니라, '빠뜨릭'이라 강조하던 어떤 애가 마침 떠올라, '이게 동양식 관대함이야.' 하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동양인들끼리는 일종의 '이심전심'.. 2018. 8. 25.
두 번째 독일 입성기 나의 세 번 독일행 중에 두 번째 독일에 갔을 때의 일을 기억해보려 한다. 포스팅 전에, 나의 기억이란 건 사진으로 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정도의 개인사적인 것이라서 특별히 볼 게 없음을 전제한다. 특히 이 이야기들은 이미 20년이나 묵은, 털면 먼지라도 일 것 같은 케케묵은 것들이라, 정보를 바란다면 더 더욱 그냥 패스해도 좋다. 이 포스팅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블로그도 일기의 일환이라..) 유학이었는지, 어학연수였는지, 어쨌거나 유학이라 우기며 출발했던 이십대 중반 프라이부르크 행에서 오래지 않아 귀국해버린 후, 또 나간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추호도 꺼낼 수가 없었다. 원래 생각은 집에서 한 학기 정도 입학허가서를 기다리며 쉬다가 바로 다른 도시로 갈 생각이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이.. 2018.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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