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x250
팔당대교 아래 산곡천과 만나는 모래톱 인근은 겨울이 되면 철새들로 붐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고니다. 크고 흰 자태를 뽐내며 끼룩거리는 소리들로 겨울 풍경의 한 자락을 채워주었는데, 어느 순간 봄인가 싶더니 벌써 떠나고 없다.
고니 보러 갔다가 허탕친 날, 당정뜰 저녁 산책
미세먼지가 오래 이어져 한동안 산책을 못 나왔다.
어느새 산수유도 피고 봄인가 싶어 팔당대교 인근까지 무작정 걸어보았다.
이쯤 오면 고니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어째 조용하니 뭔가 낯설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설마 벌써 갔을까 애써 부정해 본다.
늦었다.
갑자기 오래된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갈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 날 울리지 말아요."
아니, 이게 아닌데...
그 반대로, 갈 때는 말이라도 하고 가야지, 이렇게 별안간 가버리는 게 어딨냐고 외쳐보고 싶었다.
들을 리 없는 고니들에게.
겨울철새들이 가고 없으니 이런 안내판마저 썰렁해 보인다.
이곳을 찾는 새들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QR코드 안내판이다.
나도 모르게 이번에는 또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를 흥얼거린다.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을 붙였던 곡...
"Away, I'd rather sail away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이번에는 절묘하게도 가사와 상황이 딱맞다.
떠도는 고니(=백조)들처럼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짐은.
해가 지평선에 걸려 있다.
이제 막 겨울을 난 초목들이 봄을 향해 뻗어내는 뿌연 기지개가 보인다.
당정뜰에 어둠이 깔릴 때,
'여기서부터는 도시'라고 환한 불빛으로 경계를 짓는 건물들...
이제 또 그 불빛 속으로 간다.
오랜만에 저녁 산책을 마치고.
작별인사 없이 가버린 고니들이 서운하다.
반응형
'하루 또 하루 > 사진 한 장 또 한 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산훈련소에서 온 눈물박스 (0) | 2024.11.19 |
---|---|
달을 보며 (0) | 2023.09.05 |
첫눈 내린 날 쓰는 일기 (23) | 2021.12.18 |
하남 당정뜰 저녁 산책, 밤하늘 풍경과 나 (34) | 2021.12.11 |
늦가을 산책로에서 (32) | 2021.1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