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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날씨 좋은 휴일에 꼬리곰탕 만들기

by 비르케 2021.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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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휴일에 꼬리곰탕 만들기

타지에서 공부 중인 큰애가 갑자기 다녀간다고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냉동실에 잠자던 소꼬리를 꺼냈다.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다 보니 생고기를 손질하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집에 오는 아들이라 먹던반찬만 내놓을 수가 없었다. 포항터미널에서 서울터미널까지만 해도 3시간 반, 이동하는 시간까지 다 더하면 편도 네 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를 찾아오는 아들이다. 

 

밤새 찬물에 담가두었던 소꼬리를 한 번 끓여낸 후, 어린애 얼굴 씻기듯 어루만지며 씻어서 먹기 좋게 다듬어주었다. 찬물을 갈아대고 끓인 물을 붓고 기름기 가득한 곰솥을 더운물에 씻고... 고기를 넣었다 꺼냈다, 곰솥을 들었다 내려놨다 하다 보니 하루 온종일 부산하다.

 

마침 옆에 온 작은애에게, '엄마 이제 꼬리곰탕은 더는 안 할래' 했더니만, 지난번에도 내가 그 소리를 했다는 거다. 와~ 소름.. '그때도 힘들었구나' 하면서 내가 나를 달래고, 아마도 언젠가 또 이 짓을 자발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자기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라는데, 아마도 나는 언젠가 분명 세상에서 가장 기쁜 엄마가 되고싶어 소꼬리를 또 손질하고 있을 것만 같다. 

 

 

    우리집  꼬리곰탕       

- 찬물에 소꼬리와 잡뼈를 담가 반나절 정도 수시로 물을 갈아가며 핏물을 제거한다.

- 물을 부어 끓이다가, 20분 정도 끓고 나면 고기만 건져내고 물은 버린다. 

- 고기는 찬물에 씻어 피와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듬어준다.

- 깨끗한 곰솥에 고기를 넣고, 무 양파 통마늘 파 등을 넣은 후 정수기 물을 부어 끓여준다.

- 한소끔 끓고 나면 불을 줄여 약한 불로 두 시간 정도 끓인다. (첫 번째 국물)

 

 

 

여기까지 하고나면 그제야 한숨 돌린다. 날씨 좋은 휴일인데 꼬리곰탕 끓이느라 밖에도 못 나가고, 커피 한 잔 내려서 식탁에 앉아본다. 밖은 초록빛 나무들이 여름을 알리고, 요새 들어 박새 울음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망중한이 이런 것인가. 참 편안하다.

박새 소리.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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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없이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날도 그리 덥지 않아 곰탕 만들기에 딱 좋은 날씨다. 추운 날은 문을 계속 열기 어렵고 더운 날은 집안 전체가 열기로 뜨거워진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도 문을 못 여니 기름 냄새로 찝찝함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렇게 날씨 좋은 날이 곰탕 만들기 알맞은 날이다. 

 

 

- 두 시간이 지나 고기를 건져주었다. 처음에는 뜨거우므로 식을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살을 바른다. 우리 가족은 오래 삶아서 흐물거리는 고기는 안 좋아해서 이 정도만 끓인다.

꼬리는 엄지손가락으로 죽 밀면 살의 결이 찢어지면서 도려내듯 깨끗이 발린다. 발라낸 뼈들은 더 끓일 거라 다시 곰솥으로 집어넣어 준다.

 

발라놓은 고기를 죽그릇에 나눠 담았다. 육식은 안 하지만 손의 감각으로 이 고기가 얼마나 야들야들한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주부 9단까지는 아니어도 한 7단 정도는 되지 않을까.

 

 

 

- 이제부터는 뼈 국물 우려내기가 반복된다. 네댓 시간 끓인 국물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옮겨 식히고 다시 물을 부어서 두 번째 국물을 우려주었다. 세 번까지 우려도 되지만 지난번에 만들어둔 국물이 아직 냉동실에 그대로 있어서 두 번만 우렸다. 

- 뼈는 버리고 첫 번째 두 번째 국물을 곰솥에 한데 모아서 끓인 후, 식혀서 채에 걸러주었다. 혹시 모를 뼛가루나 텁텁한 찌꺼기를 걸러내 주기 위함이다. 국물이 어느 정도 식으면 곰솥을 차가운 데 놓아두었다가 기름을 제거해준다. 

 

- 곰탕에 올릴 고명으로 지단도 부쳤다.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분리해 하면 좋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노른자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란을 쪼개서 살짝 기울이면 흰자가 또르르 떨어진다. 노른자만 남으면 프라이팬에 떨궈서 나무젓가락으로 살살 펴준다. 뒤집을 때도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아래다 끼워서 뒤집으면 잘 뒤집힌다.

 

 

꼬리곰탕 만든다고 하루 종일 씨름하다가 휴일 하루가 이렇게 간다. 원래는 2박 3일 걸려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인데, 급하게 아들 먹이려고 하루에 다 하다보니 무리를 했다. 이렇게 종일을 만들었는데, 제대로 먹고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야 하니 저녁도 먹고 올 것 같아서 작은애만 차려주었는데, 아침에나 한 끼 잘 먹고 내려가면 좋겠다.

 

소꼬리 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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