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방송됐던 단막극, '파란'을 보았다. 사림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붕당정치를 시작한 때를 배경으로, 배신과 모략 속에 진실마저 왜곡되던 시대를 사는 주인공들의 아픔을 그렸다. 붕당정치는 파벌을 재구성하며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다.
단막극 '파란', 당파싸움의 시작 붕당정치 시대의 아픔
파란 (波瀾 : 2001년 드라마시티 방영)
출연: 김민희, 이효정, 김성수, 이시은, 안해숙, 남일우 등
붕당정치가 만든 당파싸움의 시대
붕당은 조선시대에 선비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업을 했던 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학문적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그랬던 것이, 학문적인 견해 차이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정치적으로 파벌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붕당의 시작은 선조때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대립한 것을 기점으로 한다.
이 작품도 붕당의 시초인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극의 초반에 정여립의 역모 이야기가 나온다. 정여립은 서인 출신이었으나 동인으로 전향하여 동인의 중진이 된 인물이다.
붕당정치가 무르익으면서 자신만 청렴하면 되는 게 아니라, 줄을 잘못 서면 비록 아무 잘못 없이도 굴비 엮이듯 엮인 채 끌려가 죽음을 당하고 멸문지화를 입게 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해졌다. 각 당파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상대 집단을 모략하고 판을 뒤집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졌던 붕당은, 이후에 동인이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되면서 남인이 득세를 하게 되어, 그 이후로는 남인과 서인의 싸움이 된다. 숙종 때 이르러 장희빈을 등에 업은 남인 세력이 약해지면서 서인들이 자신들끼리 분열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다.
왕이 주도권을 가지고 환국을 단행한 적도 있다. 신하들 싸움에 왕이 나서서 권력을 분산했던 것이다. 숙종 때였다. 그 뒤로 영조에 이르러서는 탕평책을 써, 노론과 소론에서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려 노력했다. 늘그막에 얻은 귀한 세자를 뒤주에 가둬 벌을 주려 했던 이유도 대찬 신하들의 모략 때문이었고, 이를 무시할 수 없는 당시 분위기 탓이기도 했다. 죽일 생각까지야 없었겠지만, 결국 사도세자는 그렇게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똑똑히 본 정조는 그런 이유때문에 한편으로 탕평책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붕당에 속하지 않은 정약용 같은 인재를 가까이했다. 할아버지(영조)의 늙은 신하들을 피해 새로운 신도시 화성을 짓고자 했음도 그와 연관이 있다. 실제로 정조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친위부대를 키워나갔다. 정조가 죽고는 다시 시파와 벽파로 나뉘어,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세상으로 차츰 바뀌어간다.
단막극 - '파란'
예란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그곳에서 어느 선비를 만난다. 그날 다리를 다친 예란에게 선비는 자신의 대금을 부목 삼아 예란의 다리에 끼워주었고, 그때 얻은 그 대금을 예란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 곧 시집을 가게 된 예란, 그녀의 집에 신랑이 될 교동 도령이 찾아온다. 그는 예란의 오라비의 오랜 벗으로, 같은 동인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고, 정여립의 역모로 동인들이 위태로움에 빠져 있음을 염려해 예란의 오라비를 찾은 것이었다. 그 염려대로, 곧이어 의금부에서 나온 군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친다.
예란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허름한 옷으로 바꿔 입고 교동 도령의 집을 향한다. 가는 도중에 의금부 군사들을 만나 의심을 사지만, 그중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자가 그녀를 그냥 지나가게 한다. 잠시 후, 그는 예란의 집을 덮쳤다가 그곳에서 대금을 발견하게 되고, 의미심장한 표정이 된다.
예란은 오라비가 말한 대로 약속한 장소에서 교동도령을 기다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고 어찌 된 일인지 낯선 곳에서 정신이 든다. 그리고 노비 신세가 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도망치던 날 자신을 보내줬던 그 남자, 자신의 집에 그 밤 들이닥쳤던 자의 집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홍문관 부재학으로 승진해 있다.
(원수의 얼굴을 본 예란, 들고 들어오던 술상을 손에서 놓쳐 뒤엎고 만다. 그 당시 영화드라마에서는 놀라면 무조건 떨어뜨리고 깨고... 그 시절 클리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여주의 연기가 썩 맘에 들지 않던 터에 잠시 흐름도 깨지고. 원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의금부에서 죄인을 잡으러 온 것이지, 잡으러 온 사람이 원수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원수라고 치고 본다. 실제로 망한 동인이 아니면 서인들이었을 테니, 동인을 잡으러 올 정도면 일단 동인은 아닌 거니까.)
어린 시절 그 절을 다시 찾게 된 예란, 아버지와 오라비의 49제를 지내기 위해 온 그곳에서 교동도령을 만난다. 그 또한 49제를 기억해 이곳을 찾았던 것... 한때 부부의 연을 맺을 뻔했던 그와의 시간을 통해 예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그녀.
그녀의 행동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이 오래전 다친 다리에 대금을 끼워주던 그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밤, 그날의 그 대금소리가 오래도록 가슴에 상처로 남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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