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주변 자연보존지역으로 오래 남아 있던 공간들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들과는 다른 또 다른 멋이 있다. 어쩌면 수백 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수목들과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들, 인기척에 놀라 풀숲으로 뛰어드는 고라니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새들과 곤충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당정뜰에서 만나는 겨울 풍경, 고라니 두 마리
옷을 단단히 입고 당정뜰 산책에 나선다. 겨울바람이 몹시도 차갑다. 잎을 떨군 나목들이 겨울바람에 떨고 있다. 연둣빛으로 물오르던 봄도, 풍성한 잎으로 초록을 뽐내던 여름도, 화려한 색감으로 탄성을 자아내던 가을도 가고, 이렇게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겨울이 됐다. 사람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한 이런 모습도 이대로 또 좋다.
사진 속 왼편에 있는 나무는 일년전 겨울에도 마른 잎을 계속 달고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훌훌 떨궈 갈 길 가게 해야 할 마른 잎들을 한사코 매달고 있다. 때가 되면 떨굴 줄도 알아야 하거늘 못내 안타깝다.
휘어져 있는 버드나무가 만들어내는 멋진 구도도 본다. 비 오는 밤이면 길가에 서서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던 버드나무다. 머리를 풀어헤친 것처럼 하늘거리는 모습에 옛날 귀신 이야기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었는데, 꽃가루 때문에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이제는 많아졌다. 지금 생긴 신도시들에는 유독 귀한 나무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위쪽으로 터줏대감 한 분이 지나신다.
보호색이 따로 없을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디 가세여?"
들은 체도 안 하신다.
"위로는 더 가지 마세여, 찻길이어여."
다 알고 있다고 한다.
멀리 북에서 오신 분들도 팔당대교 아래 자리를 잡았다. 큰고니들이다. 흡사 거위 소리를 방불케 한다. 아주 추운 날에는 날개깃에다 얼굴을 파묻고 있느라 조용한데, 지금은 '꽥꽥' 시끌벅적하다.
이 일대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준하여 관리되는 구역이라 낚시, 수영, 행락, 야영 및 취사, 농작물 경작 등이 금지되어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위험 때문에도 철새들에게의 접근은 자제 권고를 받고 있다.
화려한 연꽃을 피우던 당정뜰 연못에도 겨울은 와 있다. 분홍빛 큼직한 꽃으로 피어났던 그날의 영광을 뒤로하고 얼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움틀 준비를 하고 있는 연이다. 빗방울 동글게 받아주던 널따란 잎들을 다시 물이 감싸 안고 몇 번 얼었다 녹았다 하고 나면 새로운 잎이 다음 여름을 빛내줄 것이다.
지난 가을 이곳 당정뜰 연못에서 유유히 물속을 걷고 있던 왜가리를 보았다.
참 고풍스럽고 단아한 걸음걸이다.
어쩜 저리 요염하게 걷는지,
도도하고 여유롭고...
동물이지만 이런 모습, 닮고 싶어졌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박완서 소설의 제목처럼,
그 많던 물고기들과 새들, 곤충들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답을 알고 싶다기보다
해마다 겨울이면 사라지고 봄과 함께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그저 묻고 싶어진다.
산책로에서 또 다른 고라니를 본다.
"고란아, 안녕?"
사람을 보면 늘 도망가는 고라니인데 크게 동요치 않는다.
겅중거리며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목격할 때가 많아서 행여 내게로 뛰어오를까 겁이 난다.
살살 다가가 본다.
내가 다가가자 풀숲을 향해 들어가는 고라니, 그러다가 자꾸만 돌아본다.
"보고 또 보고",
자꾸만 본다.
얼굴이 유독 까매서 처음에 더 놀랐는데, 가만 보니 표정이 참 귀엽다.
어두워지기 전에 동물들은 보금자리를 찾고 사람도 집으로 돌아간다. 산책을 하다 보면, 만보까지는 아니라도 사람이 걷기에 딱 좋은 정도 걷게 된다. 무리하지 않고 5천~7천 정도의 걸음만 날마다 걸어도 건강에 좋다고 한다.
걷는 게 좋은 이유는 건강에도 좋겠지만 우선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수많은 생각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중에 올해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건강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균열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날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이런 생각의 연결고리들은 잠시 매듭을 지어두고 간다. 온매듭이 아닌 반매듭으로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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