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 그가 나오면 극에 활력이 생긴다.
그런데 그가 나왔는데도 내내 풀이 죽어 있다.
맡은 배역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를 대신해 활력을 주는 또 다른 사람, 죽음을 앞둔 남자와 그녀의 사랑밀당 이야기가 볼 만하다.
나 곧 죽어(2014년), 삶과 죽음 사이 어떤 해프닝
바다 앞에 선 한 남자.
줌아웃하면, 장소는 비디오아트 전시장이다.
모니터 속 바다를 보며 꽤 비장한 모습.
어디론가 떠날 것처럼 캐리어를 쥐고 있다.
회사도 그만두고, 적금도 모두 해약했다.
방도 뺐는데, 가전이랑 가구도 모두 두고 간단다.
그의 이름은 최우진(오정세).
'열심히 살았다. 사시행시 갈아타며 고시촌에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승리는 늘 간절하지 않은 이들의 몫이었고...
난 늘 운이 없는 놈이었다. '
이렇게 독백을 하는 서른다섯의 그가 캐리어를 끌고 길을 걷는다.
어릴 적 친구 병훈을 마주친다.
언뜻 보니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슬쩍 피해본다.
같은 회사 경리과 사랑이(김슬기)도 피하고 본다.
부담스럽다.
얼마 전 복통이 있어 찾은 병원에서, 그는 췌장암 말기라는 갑작스러운 선고를 받았다.
길어야 3개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우진.
죽는다는데 돈이 무슨 소용, 스위트룸 3개월 한꺼번에 결제하고, 식사도 비싼 레스토랑을 다니며 한다.
생의 마지막을 럭셔리하게 장식하려 작심한 듯.
첫사랑 민희도 어렵사리 수배해 만난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그녀지만 잠시 옛 추억에 잠겨본다.
그러나 민희는 젊은 시절의 그 민희가 아니었고...
같은 회사 직원 가연도 만난다.
사랑인가 했었는데, 막판에 고배를 마시게 했던 그녀다.
마지막 3개월을 동정으로라도 사귀어줬으면 했지만 그마저도 안 된다.
또 한 번 절망하는 우진.
민희와 가연을 만나보고 나니 자신이 그간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마다 그의 곁에 다가오는 한 사람, 경리과 사랑이...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우진의 표정을 보고, 다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데, 사랑이만 이렇게 말한다.
"현재를 뜨겁게" 살라고.
우진의 입장에서는, 사랑이가 하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소멸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잊혀질 뿐이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상대의 행복을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
한 번뿐인 인생 얼마 안 남았으니 더 뜨겁게 살고 싶은 생각이 교차하는 그다.
하지만 생의 끝에서 바라보니, 이도 저도 다 의미 없다.
자신이 그간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맘에 걸릴 뿐.
한 번쯤 이런 해프닝을 겪게 된다면, 인생이 어떤 의미인지 몸소 느끼게 될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은 거의 틀린 말이다.
시간이 지나있을 뿐, 해결은 사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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